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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병원은 호텔이나 백화점이 아닙니다"

청진기 "병원은 호텔이나 백화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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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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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 최규연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언제부터인가 '의료서비스' 혹은 '보건의료서비스'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서비스는 원래 서구에서 도입된 용어로 긍정적인 의미로 흔히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봉사·제공' 또는 '섬기다·제공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고 인간관계의 진솔한 관계를 나타내는 의미이기도 하나, 산업혁명 이후 각종 상거래가 많아지고 사람들간의 금전적인 이동으로 사람을 대할 때 봉사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제가 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각종 직업들이 분화하고 상거래가 폭증함에 따라 서비스 산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서비스=봉사'라는 개념이 보편화 되다 못해 여기저기서 서비스라는 용어가 난무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비스라는 개념이 의료계에도 도입되고, 의사와 환자 간에도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제공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래가 필요하고 이에 따른 약속을 성실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의료서비스도 의사와 환자 간에 양자 간에 책임을 지는 구체적인 계약이 전제돼야 하며, 이에 따라 서로에게 의무와 권리가 부과돼야 한다.

서로가 성실하게 대하고 암묵적인 약속을 지켜야 하며 신뢰를 가져야 한다. 이 관계에서는 한 쪽의 일방적인 우월적 위치가 있을 수 없으며, 의료인만이 서비스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비스라는 용어가 가지는 의미를 어느 한쪽의 권리이고 의무라고만 생각하는 편향된 사고로 의료서비스를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의료현장에서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의사들은 서비스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필자는 최근 진료 현장에서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 권리만을 찾으려는 일부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의사들과 의료계가 일방적인 우월한 위치에서 계약을 하고 있다는 피해의식과 함께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의료행위에 대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의료인과 환자, 보험자 삼자 사이의 계약에 대한 성실한 의무와 권리를 부과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어느 한쪽이라도 일방적인 우월한 위치를 행사하려고 하면 관계는 갈등과 불신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의료사고와 불완전한 치료, 고소 등으로 귀결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주말 새벽에 걸려온 전공의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운전해 간신히 병원에 도착해 분만을 맡았다. 분만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보호자의 못마땅한 얼굴 표정이 보였으나 분만이 급한 상황이라 기색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다음날 전공의와 간호사들로부터 보호자의 폭언과 불평에 대해 알게 됐다. '담당주치의가 왜 이리 늦게 오느냐? 남자 전공의 선생님은 내진하지 말아라, 의사 늦게 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 서비스가 왜 이것밖에 안되냐' 하면서 삿대질과 큰소리로 분만실을 공포분위기로 몰고 갔다는 내용이다.

일주일 뒤 외래로 온 산모에게 들은 내용인 즉, 첫아이를 미국에서 분만했고 그 때 분만과 입원비로 1500만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비용에 비해 서비스가 안 좋아서 그랬을 것이라는 변명을 한다.

도대체 병원에서 어떤 서비스를 기대했느냐, 분만 비용은 얼마를 지불했나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대답인 즉, 자신들이 입원할 때부터 주치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간호사가 자신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베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원비는 30여 만원을 지불했는데, 자신들도 너무나 저렴한 비용에 놀랐다는 대답을 한다. 그런데 필자를 더욱 당황하게 한 것은 의료진에게 한 폭언과 행동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태도였다.

한국의 분만 비용이 미국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었을 테고, 새벽에 주치의가 나와 분만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을 터이고, 24시간 근무하는 응급실이 아닌 한 근무 외 시간에 급하게 진행되는 분만의 경우 당직의가 분만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외래에서 고지했음에도 모든 상황을 자신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야간 당직 전공의의 내진 소견을 통해 적절한 시간에 주치의에게 연락이 돼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데 내진도 거부하고 어떻게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제서야 자신들의 행동이 과했다고 인정한다.

의료비를 지불한 만큼의 서비스를 강조하는데 '본인부담금으로 지불한 비용으로 미국의 경우와 단순히 비교할 수 있는지요?'라고 하니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의료서비스를 부르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가 의료행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긴다면 서비스를 계약하고 약속을 한 당사자들끼리도 암묵적인 책임과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지 묻고 싶다.

병원에 와서 대형백화점, 호텔에서 받는 서비스를 똑같이 받기를 요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병원은 호텔이나 백화점에서 비용을 지불한 만큼 서비스를 받는 곳이 아니랍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서비스를 원하면 의료인과 병원을 원하는 만큼 고용하고 사용할 비용을 지불해야 되는 것이 아닌지요?"라고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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