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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위한 불만(不滿)
환자를 위한 불만(不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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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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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암은 없다 Ⅱ

유방암은 완치율이 높은 암으로 알려져 있으나, 종양의 특성에 따른 질환의 진행 양상이 다르며 전이, 재발되는 경우 환자의 60% 이상이 5년 내 사망하고 있다.

이에 여전히 유방암 치료는 더 발전이 필요하며,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 의료계를 비롯한 많은 관련 전문가들의 노력과 사회적 관심 및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 진료 현장의 전문가들로부터 유방암 치료의 현실과 앞으로의 도전과제를 3회에 걸쳐 들어 본다.<편집자 주>

▲ 박경화 교수(고려대학교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세 시간씩 꾸준히 연습했다고 한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한 지인이 그에게 '왜 아직도 연습이 필요한가'라고 묻자, 늙은 거장은 '왜냐면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답했다.

이 짧은 일화는 현재의 상태가 최상이 아니라는 인식이야 말로 더 큰 성취로 다가가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임상 현장에 적용하자면, '미충족된 의학적 요구(Medical unmet needs)'에 대한 인식인 셈이다.

특히 죽음과 가까웠던 암이 만성질환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미충족된 의학적 요구'의 정의는 더욱더 중요해 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유방암은 쉬운 암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이성 유방암은 여전히 환자의 절반 이상이 5년 내에 사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항암 치료 분야는 암 환자들의 생존이라는 시점에서 '미충족된 의학적 요구'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HER2 양성 유방암 치료 분야다. 90년대 말 트라스투주맙이 등장하면서, 일반적인 유방암 환자보다 생존기간이 짧았던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들의 생존 곡선 자체가 변화하는 큰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에서 5년에 육박하는 전체생존기간(56.5개월)을 입증한 퍼투주맙(제품명 퍼제타)이 등장했다. 또, 퍼투주맙 치료 진행 후에도, 2차 치료제로서 트라스투주맙 엠탄신(제품명 캐싸일라)이 우수한 전체생존기간 연장 효과를 나타냄에 따라 기존의 1, 2차 치료 요법 모두가 더 나은 치료 옵션으로 대체될 수 있게 됐다.

이는 전이암 치료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의학적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유방암에서도 호르몬 수용체 양성암에 이어 HER-2 양성 전이암도 이제는 만성병으로 인지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의학적 성과에 대한 우리나라 환자의 치료접근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건강보험급여'라는 큰 산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치료제들이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 효과를 입증하더라도, 그것이 국내 현장에 도입되기까지의 기약 없는 기다림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치료제가 없는 것이 아니기에 기존의 치료 옵션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치료제가 있느냐 여부보다 치료의 목표가 달성 됐느냐를 고려한다면 현재의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옵션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유방암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10여년 전 인구 10만 명 당 4.8명이었던 유방암 사망률은 꾸준히 증가해 현재는 인구 10만 명 당 7.9명에 이른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5년 상대생존율이 30% 대에 불과한, 절박한 이들이다. 유방암 환자들을 매일 마주하는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 최선의 치료 옵션은 '미충족된 의학적 요구'로써 저 먼 곳에 존재할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바로 쓸 수 있도록 임상 현장에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미충족된 의학적 요구'에 대한 인식이 유방암 치료 환경의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임상현장의 전문가들과 관련 정책결정자 모두가 함께 현재의 유방암 치료에 대한 '불만'을 공유해야 한다.

이미 예전의 유방암 환자에 비하면 충분한 생존 기간의 연장을 누리고 있다라는 말이나, 다른 암종보다는 표적 치료제 적용을 많이 받기 때문에 형평성 차원에서 효과가 검증된 항암제의 적용이 어렵다는 관점은 환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다.

새로운 표적치료제의 적용은 단순히 유방암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한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해 내고, 직업적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기간의 연장이라는 사회적 측면에서 이해돼야 한다.

의료진들은 정책결정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옵션 도입의 의의와 그 임상적 혜택에 대해 가장 잘 말해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니 만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나가야 한다.

또, 정책결정자들은 비용의 측면에서만 치료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치료를 통해 국내의 의료 수준이 발전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질병인 암 정복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거시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환자단체에서는 혼자서는 절박함을 알리기 어려운 환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치료 환경 개선의 시급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유방암 극복은 아직 '먼 길'이다. 같은 '불만'을 품은 의료현장의 전문가들, 정책결정자들, 환자들의 동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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