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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언어 해체

청진기 언어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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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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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서울 금천·명이비인후과의원/전 의료윤리연구회장)

▲ 이명진(서울 금천·명이비인후과의원/전 의료윤리연구회장)

구조주의(structuralism)란 세상이 보편성의 원리와 동질성이 지배하는 어떤 구조, 즉 언어적 구조·사회적 구조·문화적 구조 등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사조의 하나이다.

프랑스 언어철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구조언어학을 통해 구조주의 철학 사조를 개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언어라는 구조에 속해있고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구조언어학에서는 언어를 모두 사회적인 약속이요 규칙으로 본다.

모두가 '사과'라는 과일의 이름을 '사과'라 부르는데, 자신의 마음에 입장이나 이익에 따라 '사과'를 '빨간 손'이라고 부른다면 다른 사람은 '사과'라는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불만스럽거나 들지 않더라도 남들이 알아듣게 하려면 문법과 사회가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의미를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 그래서 소쉬르는 언어란 사회적 규칙이라고 했고, 이 사회적 규칙으로서 언어를 '랑그'라고 불렀다.

이런 언어구조학적 접근에 반대하는 사조를 후기구조주의 혹은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 한다. 해체주의는 기존의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가치와 통념, 사회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치체계를 만들어 보겠다는 주장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물고, 개인의 욕망을 한껏 분출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반계몽주의자, 반합리주의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언어는 그 정의를 때에 맞춰 잘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언어라는 구조를 프레임으로 해 보편적이고 동질적으로 인정하는 언어의 뜻과 정의를 왜곡해 사용해서 본래의 의미를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응급피임약이다. 이 약은 강간 등의 성범죄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나 콘돔이 찢어진 경우 등에 있어서 응급으로 사용하는 고단위의 호르몬제로, 약사용후 여성에게 끼치는 부작용이 커서 반드시 전문가의 판단을 통해 제한적으로 처방되고 사용돼야하는 약이다.

그래서 영어 표기도 'Emergency contraceptive'로 돼 있어, 응급피임약으로 명명해야 바른 번역이지만 '사후피임약' 혹은 '긴급피임약'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후피임약'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게 되면서 성관계후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듯 한 인상을 받게 된다.

실제로 최근 응급피임약의 사용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급속한 증가 속도에는 언어를 통한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한의사들이 의사를 '양의사'로 부르고 싶어 하는 행동이다. 의사란 의과대학에서 현대 의학을 배우고 익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고, 한의사란 한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사람을 말한다.

사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동질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의사라는 단어를 자신들과 구분하기 위해 양의사라고 구분한다는 것은 사회질서를 해체하는 반합리주의적 행동으로 보아진다. 한의사들은 의사를 양의사로 일컬으며 시비를 두기 전에 왜 한(漢)의사와 한(韓)의사로 구분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의사라는 명칭을 갖고 싶으면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면허를 따면 된다. 더 이상 '호박에 금 긋기'와 같은 말장난은 그만 두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수년전 국립국어원에 결혼과 연애에 대한 정의를 바꾸어 달라고 주장했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그룹의 행동이다. 예를 들어 '연인'이란 말의 정의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 또는 이성으로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도 없이 국립국어원이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남녀'가 '두 사람'으로 바뀌고 '이성'(異性)이란 말도 빼었다가 시민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제 위치로 돌려놓은 경우이다. 그들은 결혼의 정의마저도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해 바꾸어 보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사회가 받아들이는 보편적인 가치와 의미를 자신의 이익이나 입장을 위해 바꿔 사용하는 행동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행동이기에 받아들이기 힘들고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포스트 모던시대를 살아가며 지켜야 할 가치와 기준, 질서를 위해서는 언어의 사용을 잘 사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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