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5 18:04 (목)
의학연구 가로막는 '개인정보보호법'

의학연구 가로막는 '개인정보보호법'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5.10.18 20:3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진석(의사,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 조진석(의사,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2014년 8월 7일부터 주민등록번호의 처리를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2014년 8월 7일 이전까지는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으면 주민등록번호의 처리가 가능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주민등록번호의 처리를 요구하거나 허용한 경우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명백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앞의 사유에 준하여 주민등록번호 처리가 불가피한 경우로서 안전행정부령으로 정하는 상황에 해당하지 않은 경우 외에는 주민등록번호를 처리할 수 없게 됐다.

의학연구자가 의학연구를 수행할 때 개별 연구대상자 식별, 역학조사를 위한 정보 수집, 연구대상자의 사망 여부 및 사망원인을 확인하거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빅데이터 분석 등의 의학연구 활동을 위해 연구대상자의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감염질환자의 역학 분석, 암이나 뇌혈관 질환자의 사망 분석, 치매 환자의 진단 후 유병 기간 및 사망원인 분석, 특정 코호트의 질병 역학 및 사망원인 분석 등의 의학연구에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연구대상자들에게 의학연구를 위해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함을 알리고, 동의를 받아 주민등록번호를 수집·처리해 왔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의학연구분야에서 더는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연구대상자의 동의를 받아 수집한 주민등록번호도 모두 폐기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의학연구수행이 제한되거나 연구수행을 중단할 수도 있으므로 대책이 필요하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유럽연합(EU)이 개인정보주체(연구대상자)의 동의 요건을 강화해 의사와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부담을 주고, 의학연구가 전면적으로 중단될 수도 있는 '유럽연합의 정보보호 일반규정안'을 입법예고한 적이 있다.

이에 유럽종양학연구회(ESMO)는 "유럽연합의 입법예고안으로 의학연구가 전면적으로 중단되거나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환자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입법예고안 변경을 위한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벌였다.

유럽연합은 입법예고안을 상당 부분 변경해 다시 입법예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으로 의료기관에서 진료 예약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의료계와 병원계가 주민등록번호 처리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을 호소하고 나선 적이 있다. 관련 부처는 진료 예약할 때 주민등록번호 처리가 가능하도록 조처를 한 사례가 있다.

만약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의학연구가 제한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과적으로 의학연구 발전을 저해하는 악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분야 빅데이터 이용 연구사업도 적절히 수행할 수 없게 돼 의료분야의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보건의료정책에 적절한 연구결과를 반영하지 못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국민의 건강과 사회보건이 위협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의학 관련 학회, 의학연구자모임, 연구수행기관 등의 연구 관련 단체들도 의학연구 목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법률을 개정하거나 안전행정부령 제정을 적극적으로 요청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법률 개정이나 여론 조성을 위한 움직임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면서 시간이 더 지체된다면 의학연구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 우리나라 연구 관련 단체들도 유럽종양학연구회나 진료 예약할 때 주민등록번호 처리가 가능하도록 한 사례를 본받아 더 늦기 전에 문제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의학연구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 사용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개인정보 처리 실태에 관해 검토해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의학연구가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정부도 의학연구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의학연구 제한으로 인한 문제점을 직시해 의학연구 목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이나 안전행정부령 제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2007년 울산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 인턴과정을 수료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2010∼2013)을 졸업, 법학전문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 4월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법무법인 세승 소속변호사로 울산대 대학원 의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