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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6 11:27 (화)
'죄를 짓는 교육(The Sinning Education)'
'죄를 짓는 교육(The Sinning Education)'
  •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서울 금천·명이비인후과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5.10.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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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없거나 술기 모자란 진료 '악행 금지의 원칙' 위배
부실 의대·전공의 교육으로 인한 피해 환자에게 대물림
좋은 교육환경 조성할 의무 정부에 있어…죄 짓는 교육 개선을

▲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서울 금천·명이비인후과의원)
아스베리우스 프리취는 '죄를 범하는 의사(The Sinning Doctor)' 중에서 "의술에 완전한 능력을 지니지 못한 채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은 의사의 도덕적 죄악 중에서 가장 중한 죄이고 의사들은 독서 수준을 넘어서는 치료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더듬거리는 박애주의자보다는 능력 있는 악당에게 수술을 맡기겠다"라는 말로 의사들이 전문적인 지식과 술기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병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진료를 하거나, 알기는 많이 알아도 술기가 모자라 수술이나 시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의사를 두고 말한 것이다. 의료윤리의 네 원칙(자율성 존중 원칙·악행 금지의  원칙·선행의 원칙·정의의 원칙) 중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악행 금지의 원칙에 해당한다.

만약 교육현장에서 경험을 쌓지 못한 실력 없는 의사를 배출한다면 악행을 저지르는 행위이고 죄를 짓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의학교육 현장에서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죄를 짓는 교육이 발생하고 있다. 지식과 술기를 제대로 배우기가 힘든 열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육이 내외부적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에 문제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의학교육이 이루어지는 대학과 수련병원의 문제, 수련의들의 권리확보 문제, 환자단체들의 지나친 자율성 존중 및 개인의 프라이버시 존중 요구 등 여러 요인이 제대로 된 의사, 실력 있는 의사, 신뢰할 수 있는 의사 만들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

먼저 대학의 교육환경 문제이다. 객관 구조화 진료시험(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 OSCE)과  임상진료 수행시험(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 CPX)등을 준비하며 기초적인 술기에 대한 간접 경험을 하고 있지만, 시설이 부족한 대학이 많은 상황이다. 특히 의과대학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교육환경 기준에 미달한 신설 의대가 아직도 정치인들의 표심 얻기 놀음에 기대어 신입생들을 모집하고, 교수가 모자라는 과목에 대해 외부대학 교수를 불러 몰아치기 강의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의학교육 평가 기준에 미달하는 학교를 정리하지 않은 채 놓아둘 것인지 걱정스럽다.

두 번째는 임상실습 및 수술과 시술 참관 교육 문제다. 교육병원에서 산부인과를 비롯한 여성 환자에 대한 시술이나 수술 과정을 사전 동의를 받기 전에는 참관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일어나면서 책으로만 공부한 경험 없는 의사가 만들어질 상황이다. 환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하는 자세나 응대법이 부족한 결과이지만 일부 환자들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만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당장 자신들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기는 하지만 실제 임상을 박탈당한 의사들이 배출될 것이고, 우리의 후손들은 지식만 있고 임상 경험이 없는 미숙한 의사들에게 몸을 맡겨야만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전공의 수련과정의 문제이다. 전공의 수련과정 중에 익혀야 할 술기 습득과정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전공의 교육과 처우개선에 대한 요구도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공의 허용 숫자는 배출되는 전공의보다 자리가 많다. 왜 이런 한심한 상황이 되었는지 전공의 숫자 배정에 관여하는 병원협회와 각 학회의 반성이 있었으면 한다. 수련의의 수련보다는 값싼 노동력을 얻고 싶어 무리하게 전공의 숫자를 늘린 결과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적정 수련시간 주장과 보수의 인상 요구는 이론상 맞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 스스로 배우고 경험해야 할 수련의 기회를 제한하는 역효과가 있다는 점도 알았으면 한다. 특히 현재 펠로우(전임의)제도의 대폭의 개혁이 필요하다.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실습하고 배워야 할 술기를 펠로우들이 모두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전문의 시험을 치고도 제대로 된 술기나 수술을 경험하지 못한 위험한 전문의들이 배출되고 있다.

일전 어떤 모임에서 교육병원의 높은 지위에 있는 교수의 발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골수생체검사를 전공의들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모두 직접 한다는 것이다. 선택진료의사로 지정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교육병원에서 선택진료 환자건 아니건 간에 전공의를 가르치는 지도교수로서 전공의들을 어떻게 교육하는지 방법도 기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시술이나 수술을 할 때 전공의들의 지식습득 수준을 판단하여 단계적으로 술기를 허용하면서 전공의들이 자신의 의학지식과 술기를 접목하도록 교육해야 할 텐데, 혹시라도 전공의들이 실수할까 봐 본인이 직접 모든 시술을 다 한다면 수련의들은 배울 기회가 사라진다.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하기 힘들고, 그 피해는 환자들에게 대물림될 것이다. 전공의들을 교육할 자격이 부족하고, 교육병원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수련의들도 힘든 수련의 과정을 배움의 기회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CRT 모니터로 환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환자를 만나고 환자를 돌보는 헌신과 성실함이 필요하다.
 
데이비드 흄은 "내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사회의 이익을 증가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많은 경험을 쌓은 실력 있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것은 우리보다 앞선 어떤 분이 자신의 질병과 신체를 교육현장에서 공개했기 때문이고, 경험이 없는 수련의 제자들에게 배울 기회를 제공한 교수들의 책임감 있는 교육자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책임도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교육은 많은 돈을 투자해야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국가는 좋은 의료교육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의학교육에 대한 투자 없이 무임승차의 혜택만 누려왔다. 이제는 의학교육 과정에 국가적 투자를 해야 한다. 그동안 전공의 교육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계속 있었고, 이미 정부도 알고 있기에 더는 전공의 교육에 대한 지원을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좋은 의사, 실력 있는 의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힘든 과정과 복잡한 과정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노출해 해결해야 한다. 더는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경험하고 싶어도 경험하지 못한 미숙한 의사를 만들어내는 죄를 짓는 교육을 멈춰야 한다. 아무쪼록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혜롭게 분석하고, 조정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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