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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 어린이 살리는 신념과 의술

심장병 어린이 살리는 신념과 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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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1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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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환 교수(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국내 심장질환계 권위자로 알려진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박영환 교수.

박 교수는 2005년 2월부터 지금까지 초음파진단팀과 소아과 의사 등 의료진을 이끌고 여수시보건소를 찾아 진료를 해왔다. 10년 동안 여수 지역 어린이 1000여 명을 진찰하고 치료했으며, 어려운 처지의 40여 명 소아 환자는 한국심장재단 등과 연계, 수술해 줬다.

여수 지역 심장병 어린이들뿐 아니라 제3국 심장병 어린이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활발한 의료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영환 교수를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에서 만났다.

스승 조범구 박사와의 인연이 철학과 신념으로

박영환 교수는 먼저 스승 조범구 박사 덕분에 의료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심장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범구 박사는 지난 2003년 19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받았다.

"옛날엔 심장병 하면 정말 고치기 힘든 병이었거든요. 심장 전문 병원이 지방에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스승께서 부산에서 선천성 심장병 환아 상담소를 다니며 봉사 활동을 하시는데, 저는 1990년대 부산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환자들을 함께 돌보게 된 겁니다.

선생님께선 꽤 오랫동안 해오시던 일이었고, 2000년대 들어 은퇴를 고려하실 즈음 저희가 그 일을 이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조범구 박사와 함께 부산의 심장병 환자들을 돌봤고, 2004년 조범구 박사가 은퇴하면서 박영환 교수는 장병철 교수와 그 일을 이어받았다.

"선생님께서 25년째 해오시던 일을 맡아 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새삼 '대한민국 심장병에 대해 오지는 없는가?'라는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당시 지도를 펴놓고 인구는 많은 데 비해 심장병 치료의 불모지는 어디인가 살펴보았는데요.

목포, 여수순천, 그리고 강원도 이렇게 세 곳을 고려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여수순천지역으로 결정이 됐습니다. 여수시의사회·순천시의사회 송년회나 전남대 소아과를 돌면서 미리 양해를 구하는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5년부터 매달 부산 지역을, 두 달에 한 번 여수 순천 지역을 오갔다. 초음파기기와 초음파전문기사, 소아과담당의가 함께 습관처럼 다니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10년. 10주년 기념식에서 박 교수는 여수시보건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한편 부산지역에서는 부산대·인제대·동아대 병원 등이 심장수술을 활발히 하게 되면서 환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고, 응급을 요하는 소아 환자들의 수도 자연스레 감소했다.

홀수 달만 찾던 부산을, 1년에 두 번으로 축소시켜 명목을 유지해 왔다. 물론 어려운 환경의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장병철 교수는 아직도 매달 부산을 방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수 지역에 있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지원을 통해 심장병 수술을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그저 연극과 창·탈춤을 좋아하던 학생이었던 박영환 교수는 조범구 박사와의 만남으로 조금은 다른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의사가 된 후 10여 년 세월동안 병원과 집만을 오가면서 3~4시간 걸리는 소아 수술을 1년에 300여 명씩 하는 고단한 생활이 이어졌지만, 짬을 내서 봉사하는 일은 매우 보람된 일이었다.

1960년대 80만 신생아가 지금 반으로 줄었고 태아 진단이 활성화 된 만큼 선천성 심장병 환아의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박 교수는 그 덕분에 외국 아이들까지 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미소지었다.

"조범구 선생님, 닥터 페젤라, 홍영우 선배님 등… 멘토와도 같은 분들과의 만남이 철학을 만들어냈습니다. 받을 때의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해외에도 눈돌려…제3국 심장병 환아 위한 다양한 활동

한국심장재단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 교수는 해외 사업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2년 하얼빈 소아병원 의사 3인을 데려다 연수를 시켰고, 매년 7~8차례 방문해 진료를 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중국에 산아제한이 엄격했고 한 명밖에 없는 아이가 수술을 받다가 죽으면 난리도 아니었죠. 그래서 수술을 두려워하는 의사들이 많았고요. 3년 정도 교육을 진행했던 것 같은데 당시 분위기상 쉽지 않은 노릇이었죠."

두 번째로 찾은 나라는 몽골이었다. 2003년 샤스틴병원의 소아심장과 의사 2인을 교육·연수시켰고, 2006년도에는 환자들을 초청해 수술을 진행했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많은 아이들을 도왔지만, 어쩐지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수술을 할 수 있는 팀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우즈베키스탄의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수술을 하다가도 죽거나 머리를 다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 곳 의료인들을 연수시켰다. 2006년부터는 분당차병원 홍용우 교수와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위치한 소아 병원 TPMI(Tashkent Pediatric Medical Institute)를 다녀왔다. 

"우리 병원 내 '사랑나눔회'라는 지원 단체가 있기는 하지만 원내 치료비로만 써야한다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홍용우 교수와 '러브앤채리티' 펀드를 만들어 따로 기부금을 모았고, 제3국 의사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시스템을 세팅하고 싶어서 교육이나 장비 지원 등의 일을 맡아 하게 됐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된 해외 의료봉사는 2006년 펀드를 만들면서 구체화됐다. 수술에 쓰이는 인공산화기만 해도 고가의 장비인데다 환자 연결용 튜브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2007년부터 수술 장비나 물품을 지원했다. 간호사, 인공심폐기술팀 등 11명의 인력이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2009년엔 조선족과 우즈베키스탄 소아 3인의 초청수술을 진행하기도 했다.

해외 의료봉사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리가 없다. 박 교수는 특히 우즈베키스탄을 돕는 일은 꽤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2013~2014년엔 부득이한 사정으로 의료봉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이 눈에 들어왔다. 우즈베키스탄의 1/3이나 되는 넓은 땅에 인구는 200만명이나 되지만 그 흔한 심장초음파조차 한 대 없었다.

심장수술을 돕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없어 가장 가까운 우즈베키스탄 도시인 우르겐치로 진단된 아이들을 데려와 수술했다. 주로 성인을 수술하던 병원에 소아를 수술할 수 있도록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소모품도 지원했다. 그동안 키워온 우즈베키스탄 소아심장팀이 같이 방문수술을 도왔다.

"60년대 한국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이더군요. 몽골 유목민 기질과는 또 다른 기질이죠. 그래서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우즈베키스탄뿐 아니라 베트남 초레이 병원의 의사 2명을 연수시키고 방문 수술을 진행했으며, 몽골의 샤스틴병원의 5명 심장수술팀과 미얀마 양군 어린이병원의 5명 팀도 각각 1년씩 교육시켰다. 몸은 고단하고 바쁘지만, 박 교수는 마음이 그만큼 더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기회가 없어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 아이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죠. 꾸준히 해오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이어가야 할 사명입니다."

가르치는 일이 좋아 교수가 된 박영환 교수가 학생들에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청출어람'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훌륭해지고 싶다면 후배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훌륭한 외과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사람이 습관을 바꾸는 데만 6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어쩌다가 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기간도 역시 그 정도라야 가능합니다. 에러 없는 수술을 완성하는 데는 그만큼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아낌없이 후배에게 전수해 준다고 해도 경쟁할 만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 후배가 선배보다 나중에 훌륭해진다면 이것이 청출어람이겠지요."

박영환 교수는 생각이 비슷한 후배 박한기 교수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지속해나가는 것, 7년 뒤 은퇴하게 되더라고 차별화된 신념과 철학으로 아픈 아이들을 돕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소망이라 밝혔다.

자신만의 스페셜티가 담긴 철학과 신념으로 심장이 아픈 아이들의 희망이 되어주고 있는 박영환 교수. 훗날에도 진정성 담긴 그의 의료봉사 활동이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빛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글·사진 = 정지선 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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