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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낀 세대'는 의사들에게도 있다?

청진기 '낀 세대'는 의사들에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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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1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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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 최규연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최근 국내 대표적 인구집단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소득은 줄어드는 반면 부모와 자녀에 대한 부양 부담은 늘어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아래, 윗 세대에 대한 부양부담과 '효 문화'를 간직한 마지막 세대답게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생존해 있는 베이비부머 비율은 줄었음에도 부모를 간병하는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낀 세대'의 고충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낀 세대'는 전통과 혁신이라는 양면적인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조직·이념·질서를 존중하는 교육을 받았지만, 개성과 인권, 생활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젊은 세대들과 생활하면서 현실에서 위, 아래 세대와 가치관의 충돌을 겪는 일이 빈번하다.

의사들 간에도 '낀 세대'가 있음을 필자는 공감한다. 이들의 자조 섞인 푸념은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낀 세대'들의 고충만큼 안쓰럽고 버겁다. 의사들 사이에서의 '낀 세대'가 어느 세대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베이비부머 세대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매우 주관적인 관점이긴 하지만 각자 어느 정도는 그들 세대들의 피해의식도 한 몫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하는 연령대의 의사들은 그들 집단 내에서도 사회의 '낀 세대'와 비슷한 현실에 불만 가득 섞인 푸념을 한다.

최근 들어 쏟아져 나오는 보건의료정책에 맞추느라 의료계는 정신이 없다.

환자를 본다는 의사 본연의 업무보다는 보건관련 기관에서 시행하는 여러 가지의 평가뿐만 아니라 점점 힘들어지는 병원 수익 창출, 전공의 수련규정 변화, 의과대학 평가 등등 행정적인 절차와 규정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무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업무에 쏟는 시간들이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필자의 전공의 시절은 엄격한 수련 환경으로 인해 한 달 동안 집에 못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선배 전공의가 시킨 일은 감히 거역할 수 없어 퇴근하지 못하고 온갖 잡다한 일들에 치이고, 교수님 명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의사로서 환자를 보는 일 뿐만 아니라 병원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일이 세상의 중심이었다. 집안 일과 개인 사생활은 저 멀리 내팽겨 두었던 긴 시간동안의 수련과정과 전임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잡무에 한시름 놓고 연구와 교육·진료에 매진하고 있어야 될 때, 세상은 '낀 세대'들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각종 보건의료정책들, 급변하는 의료 환경,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의료시장 뿐만 아니라 병원 내 조직원들 간의 세대차에서 오는 내부 환경 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전공의특별법'으로 인해 전공의들 수련규정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수련 시간 규정대로 전공의들의 당직규정을 맞추다 보니 낮 시간에도 전공의 선생님들이 쉬는 날이 생겨 버렸다.

전공의 선생님들을 찾으면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저 오늘 오프라서 집에 있습니다'에 놀라 미안하다 하고 얼른 전화를 끊어버린다.

필자의 전공의 시절과 비교해 볼 때 현재의 전공의 수련 환경 변화는 분명 바람직한 상황이다. 과도한 업무와 살인적인 당직 일정에서 벗어나 적절한 노동 시간을 갖게 한다는데 어찌 반대할 수가 있겠는가? 다만 공백이 생겨 버린 주간 근무뿐만 아니라 야간 당직 전공의들의 업무를 누가 대신할 것인가에 답이 없을 뿐이다.

이로 인한 업무 공백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시행되는 작금의 의료현실에서 누가 그 업무 공백을 메울 것이며 그 피해는 누가 지게 되는지!

각 세대마다 자기는 '낀 세대'라고 자조 섞인 불평을 한다. 필자는 20년 전의 힘들었던 전공의 수련 기간과 전임의 시절, 좋아지지 않는 근무환경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언젠가는 의료 환경이 개선돼 후배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최근 전공의들의 개선된 근무환경을 보면서 기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론 나와 같은 세대들에겐 오히려 또 다른 업무를 떠안게 되는 상황이 돼버린 현실과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살인적인 업무환경이 우리에겐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 들면서 아! 의사들에게도 '낀 세대'는 있나보다 라고 탄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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