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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어느 월요일, 분만은 아무나 하나
청진기 어느 월요일, 분만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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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8.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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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교수)
▲ 최규연(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교수)

월요일은 외래 진료가 없는 날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한다. 그런데 출근해보면 주말 당직 동안 입원한 환자들 때문에 회진시간이 평소보다 두 배는 길어진다.

수술 일정이 잡혀 있지 않은 월요일은 책상위에 쌓인 행정 서류와 논문 정리로 바쁜데 출근하자마자 입원한 환자들에 대한 파악과 진단, 치료 계획을 세우느라 오전이 다 지나간다.

회진을 마치고 연구실로 온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분만실에서 연락이 온다. 임신 38주 초산모, 쌍태임신, 외래 다니던 산모가 양수가 터지고, 규칙적인 진통이 있어 지금 막 분만실에 왔다는 전공의 선생님의 전화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분만실로 간다.

산모는 외래에서 두 아이 모두 두정위이면 자연분만을 꼭 시도하겠다고 했던 산모이다. 내진을 해보니 이미 4cm 열려 있고, 자궁경부는 매우 부드러운 상태에다가 진통은 3분마다 규칙적으로 강하게 오고 있었다.

자연분만을 강하게 원하고 있는데다가 별다른 위험 징후가 없어 산모가 원하는 데로 시도해 보기로 한다. 분만실과 연구실을 수시로 오고 가면서 분만진통 과정을 살핀다. 한 아이 분만도 신경 쓰이는데 두 명의 태아를 안전하게 분만시키려니 신경이 곤두선다.

다행히 진통과정이 교과서의 정상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후 4시 경이 되니 자궁경부는 거의 완전 개대되고 첫아이 머리가 다 내려와 있다.

첫아이 분만이 순조롭게 되고 작지만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 아이 분만이면 회음부 봉합을 하고, 연구실로 가서 밀린 일을 처리할 텐데, 지금은 둘째 아이 분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첫아이 분만 후 산모의 자궁은 수축이 제대로 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도 진통이 너무 약하다.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태이다. 자궁수축제 주입을 지시하고 두 번째 태아의 머리가 내려오는 정도를 파악한 후 양막파수를 시킨다.

자궁수축이 규칙적으로 오면서 산모가 다시 힘주기를 한다. 두 번째 태아 머리가 내려오면서 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두 번째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전공의, 간호사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낸다. 산모는 건강한 두 아이를 안고 남편과 함께 행복해 하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계속 한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다. 출혈량이 예사롭지 않다. 수축제와 자궁마사지를 하는데도 출혈량이 줄어들지 않는다. 쌍태아 분만을 감안한다 해도 출혈량이 많다.

자궁수축정도는 좋은 것으로 보아 자궁경부나 질부의 열상이 있나 확인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자궁경부 뒷쪽 으로 깊은 열상이 보이고 그 곳에서 출혈이 계속된다. 한참을 봉합하다 보니 두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다행히 산모의 혈압과 맥박은 안정적이고, 혈색소 감소는 심하지 않다. 분만실을 나와 보호자에게 설명하느라 한참이 걸린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출혈은 왜 이리 많이 됐느냐, 자궁경부는 왜 찢어졌느냐 등등등…. 경과를 좀 봐야 하지만 이상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산모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분만실을 나서니 월요일에 해야 했던 여러 가지 밀린 일들이 생각난다. 연구실로 다시 돌아가 밀린 일들을 정리하고 늦은 밤 퇴근 준비를 한다. 한 주의 월요일이 이렇게 시작되면 일주일을 다 보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분만을 담당하는 특히 고위험산모들을 보는 산과 의사들의 기피 현상은 심각하다. 산모 한 명이 입원하면 분만이 문제없이 되기까지 노심초사, 정상 퇴근은 아예 기대도 못하고, 새벽에 불려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분만실을 폐쇄하는 의원급 산부인과가 증가하고 있고, 대형병원이나 준 종합병원에서도 분만실 업무에 대한 수익성이 맞지 않아 경영난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분만이 순조롭게 아무 문제없이 진행돼 의료진의 전문지식이나 숙련된 술기가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인식과 분만에 소요되는 의료진의 수고와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간단한 저수가체계가 분만실을 운영할수록 적자구조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산모뿐만 아니라 가족·보건관계자·정책 입안자 등, 한명의 건강한 태아를 출생시키기 위해 하루가 다 가도록 여러명의 의료진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수고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분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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