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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 4.0 메르스 환자 ECMO 치료 직접 해보니...

한국의료 4.0 메르스 환자 ECMO 치료 직접 해보니...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5.07.3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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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교수 "유럽 학회 에크모 발표...먼나라 얘기인 줄"
메르스 종식은 의료인 애쓴 결과, 정부 투자 아껴선 안돼

▲ 정재승 교수(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정부가 7월 28일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종식을 선언하면서 '메르스 사태(?)'는 끝나가고 있다.

20일이 넘게 새로 발생한 확진자는 없고 입원해 있는 환자도 조금씩 줄어서 중환자 10여명 만이 병원에 남아있는 상태이다.

사실 메르스가 처음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올린 'MERS-CoV'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 발생 보고 논문을 그냥 쓱 한 번 읽어본 정도의 관심이랄까?

지난 5월 발표를 위해 참가했던 독일의 유럽 에크모(ECMO·체외형 막형 산화기) 학회 프로그램 중 영국 의사가 '메르스와 에크모승 라는 주제로 발표를 할 때만해도 먼 나라 얘기로 생각하고 별로 집중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귀국한지 한 달 만에 이것이 우리에게 현실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메르스환자 중 몇몇은 매우 중한 상태로 에크모를 적용했다는 것도 언론을 통해 듣고 있던 차, 내가 속한 대한흉부외과 에크모 연구회 회원들간에 우리가 뭔가 도움을 줘야하지 않겠냐는 의견 교환이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6월 19일) 긴급집담회를 열었다.

내게 메르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은 어느날 저녁, 국립중앙의료원(NMC)에서 근무하는 한 지인의 전화였다. 마침 아내와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정 선생님. NMC에 OOO입니다. 너무 급한 마음에 불쑥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우리 병원으로 메르스 환자 중 중환자들이 이송되고 있는데, 특히 에크모를 사용하고 있는 환자치료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내과·흉부외과 선생님들이 며칠째 집에도 가지 못하면서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이런 환자들에 대한 에크모 경험이 없어 치료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저희 흉부외과 선생님 두 분 중 한분은 에크모 환자 심폐소생술을 하다 노출이 의심돼 격리되셨습니다."

전화를 받으면서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내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봤고, 무슨 일인데 그러냐는 얼굴로 아내 역시 나를 잠깐 동안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찌하면 될지요?"라고 지인에게 물었다.

한참 감염의 위험성이 언론을 통해 연일 기사화 되던 때 비의료인인 아내에게 제일 중환 메르스환자 치료를 위해 NMC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얘기하는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전화를 끊은 후 아내는 흔쾌히 그 자리에서 허락을 했고, 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적극적인 도움에 나설 수 있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의 허락도 필요했다. 병원 과장님 역시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으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병원 차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셨다. 또 과장님은 다음날 오전 병원 보직자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할 수 있겠다고 말씀해주셨다.

한편으로 NMC 선생님들께 도와주겠다고 답변을 한 상태여서 오전 7시 병원 보직자회의가 끝날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도와주지 못한다고 답을 주면 여간 미안한게 아니였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회의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과장님으로부터 'Okay'라는 문자가 왔다. 당시 분위기로는 메르스에 관련된 모든 것이 민감했는데 병원이 어려운 결심을 내려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NMC를 방문했을 때 솔직히 고민은 있었다. '혹시 감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메르스에 노출돼 우리 가족과 병원에 옮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NMC를 방문한 첫날 텅 빈 병원 주차장이 메르스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철저히 신상을 적고, 방문증을 수령한 다음 주차를 했다.

또 병원으로 들어가기 전, 마중 나오시겠다던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마음의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괜찮겠지? 다 잘 되겠지?' 감염의 위험성에 때문에 내 마음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 동행해주신 마취과장님께서 "속옷을 다 벗는게 좋을 겁니다. 땀으로 완전히 젖거든요"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격리병동으로 올라갔다.

병동은 상대적으로 좁았고 많은 간호사와 의사들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다들 피곤하지만 결연한 얼굴들. 에크모 유지중인 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내가 아는 정보를 드리고 의견을 제시해 드렸다.

▲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에게 적용했던 에크모를 제거하기 위해 음압병실에 들어가기 직전 의료진들이 스스로에게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분좋게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환자는 성공적으로 에크모 제거 후 호전돼 퇴원했다(필자는 가운데).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직접 들어가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곳 선생님들께서는 괜찮으시겠냐고 몇 차례 물어보셨지만 마음을 이미 정한 상태라 이전의 떨림이나 망설임은 없었다.

'C level'로 알려진 방역복을 입기 위해 음압 격리병동 옆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덧신을 신고, 1차 장갑을 끼고나서 제일 큰 XL 방역복을 입었다.(그래도 조금 작았다) 이어서 덧신 한 개와 장갑 두개를 더 착용했다.

동영상으로는 숙지를 했으나 직접 착용하는 건 처음인데다가 덩치는 크고 옷은 좀 작고, 장소는 비좁고 해서 옷 입는데만 15분 이상은 걸린 것 같다. 그 뒤로 머리 전체를 뒤 덮는 후드와 공기 정화장치를 장착하러 옆방으로 이동했다.

다들 "숨이 막힐 수 있다"며 걱정을 해주셨고 나도 약간은 긴장을 했으나 쓰고 나서의 느낌은 왠지 편했다. 정화된 찬 공기가 들어와서 얼굴에 김이 서리는 것을 방지해 주기도 했지만 과거 뙤약볕에서 검도수련을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검도도 속옷 다 벗고 더운 도복을 입고 무거운 호면을 쓰고 호완을 끼고...모든 것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 후 이동해 2중으로 차단된 문을 차례로 열고 닫으며 드디어 환자를 대면했다.

관리가 비교적 잘 돼 있었으나 에크모적용중인 환자를 전체적으로 점검하면서 몇가지 팁을 알려드리고 line 고정, 환자 자세, 장비 운용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약 1시간 후 첫 진료를 하고 나왔다.

모두들 열정적이고,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하는 모습이어서 내가 아는 모든걸 알려드리려 애를 썼으나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처음이어서 긴장을 하기는 했지만 NMC 병원문을 나서는 느낌은 왠지 모를 뿌듯함도 있었다. 또 환자와 고생하는 의료진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동시에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대로 집이나 병원을 가도 되는 것인가? 하는 걱정도 함께 들었다. 최대한의 방어를 하고 환자 진료를 했으나 혹시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내가 오늘 수행했던 과정을 되새겼고 어느 한 부분도 노출될 가능성은 없다고 자신했다. 또 NMC 선생님들 대부분도 3∼4일에 한 번은 집에 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고 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복귀해 환자 진료를 할 수 있었다. 그날 밤 퇴근해서는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 고생을 하면서 NMC를 방문해 환자를 진료한지 3주가 지난 현재까지 내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의 환자들도, 그리고 가족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내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NMC를 첫 방문한 이후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10번 넘게 더 방문을 했던 것 같다. 회의를 위해 2∼3번을 더 방문하기도 했다.

또 내가 NMC 선생님들과 함께 진료한 에크모 환자 두 분은 호전이 돼 에크모를 성공적으로 제거했다고 들었다. 그간 함께 노력해주신 NMC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그들에게도 이번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고, 내게도 또 다른 경험을 안겨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NMC에 도움을 주다보니 정부기관에서 요청이와 언론사 브리핑에도 참여하게 되고 보건복지부 회의에도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를 보고 혹자는 다른 의도가 있어 도움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기도 했으나, 그렇지 않다. 다른 뜻이 있었다면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의 감염 위험성을 무릅쓰면서 NMC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안되겠지만,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나는 언제든지 참여할 의사가 있다.

이제 정부는 메르스 공식 종료 선언을 했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본업으로 돌아가고 휴가를 떠나고 있다. 다시 한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언론이나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해 환자를 돌보고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쓰신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정부도 이번 사태에 대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거기에 대한 투자를 결코 아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에 메르스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아직 회복하지 못한 3명의 에크모 환자와 입원중인 환자의 쾌유를 기원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허락해주신 병원장님과 과장님, 그리고 남편을 믿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응원을 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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