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고도의 위험한 행위이다."
의료소송 판결문을 읽다 보면 자주 접하는 내용이다. 본질적으로 고도의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다.
지난 3월 대법원은 피부염 환자에게 한방 치료를 고집하다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한의사 김모 씨에게 2억 6000여만원의 배상 판결을 확정했다.
이 한의사는 한약을 복용하던 환자에게 황달 증세가 나타났는데도 '변비로 인한 영향'이라며 한약을 계속 복용하게 했다.
며칠 뒤 황달증세가 더욱 심해져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한의원 방문 전까지 정상이던 환자의 간은 80∼90%가량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환자는 해당 한의원을 방문하기 전에 피부염 진료를 받기위해 모 대학병원에 예약해둔 상태였다. 예약 5일 전 방문한 환자에게 한의사 김 씨가 '면역체계 이상'이라며 "복용 중인 약을 중단하고 1년 간 한약을 복용하면 체질이 개선돼 완치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사에서는 해당 한의원의 실명 대신 충북 청주시 H 한의원이라고 밝혔다. 기사가 보도된지 4개월가량 지난 최근, 기자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한의원을 알아 보던 중 기사를 접했다는 발신인은 자신을 청주시에 거주하는 건선을 앓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라고 밝혔다.
장문의 문자 내용을 요약하면 "아이를 한의원에 데려가려는데 알아본 한의원 이름이 H로 시작해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사건의 H 한의원 실명을 알려주길 원했다.
기자는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짧게 회신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너무 겁이 나서 다시 한 번 부탁해보려 전화했습니다."
기자는 아이 어머니가 가려는 한의원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사건의 H 한의원이 아니었다.
전화를 끊은 후 문득 H 한의원이 아직도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포털 검색을 통해 한의원 번호를 알아냈고 전화를 걸었다. 한의원은 여전히 운영 중이었고 김 씨도 여전히 원장이었다.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은 패소하더라도 행정처분이 내려지지는 않는다. 의료기관의 문을 닫거나 면허가 정지, 혹은 취소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의료행위는 고도로 위험한 행위이므로 언제든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주 H 한의원 사건의 경우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병원으로 전원하지 않고 한방치료를 고집하다 발생한 사건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에 대비하지 못해 벌어진 의료사고가 아니었다.
사망 사건이 일어난 2009년으로부터 6년이 흘렀다. 그간 많은 환자들이 H 한의원을 찾았을 것이다. 사망 환자를 H 한의원에 데려간 부모의 마음과 기자에게 연락해온 어머니의 마음이 다를리 없다.
법적으로 김 씨의 한의원 운영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김 씨가 잘못을 뉘우치고 한방치료에 대한 고집과 과신을 이어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