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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남탓하기와 쏘리웍스

청진기 남탓하기와 쏘리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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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1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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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진(서울 금천·명이비인후과의원/전 의료윤리연구회장)

2015년 5월 29일 고 신해철씨 사망사고과 관련해 윤리세미나가 있었다. 고 신씨의 수술과 관련된 학회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할 부분들을 정리하는 동료평가(Peer Review)의 시간이었다.

해당 전문학회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수술의 적용 및 치료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심층 분석하고, 전문가로서 갖춰야 할 점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전문가의 자세(프로페셔널리즘)와 전문직 윤리를 바로세우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전문학회로서 전문가의 자율성(autonomy)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대한내시경복강경학회의 용기있는 행보에 찬사를 보낸다.

2014년 10월 27일 가수 신해철씨가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은 그를 좋아하던 팬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준 일이지만 의사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그가 받아온 치료과정과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의사로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성해봐야 할 문제점들이 총체적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법적인 문제는 법원의 판결에 맡겨 두더라도 의료행위의 전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윤리적 문제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의사가 지켜야 할 전문직윤리는 환자에게 진실 말하기, 환자 사생활 보호하기·환자 존중하기·환자 이익 우선하기·이해상충의 관리·충분한 정보의 제공·동료평가 등이다. 이러한 전문직 윤리를 기초로 하여 사회가 의사에게 신뢰를 갖도록 하는 가치·행동·관계의 집합을 의학 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이라고 한다.

이타심(altruism)· 책임감(accountability)·탁월성(excellence)·의무(duty)·봉사정신(service)·명예(honor)·진정성(integrity)·타인에 대한 존중(respect for others)의 덕목으로 이뤄진 의학 전문직업성은 의료행위를 하는 모든 과정에 묻어 나와야 한다.

이들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게 될 때 그 피해가 환자와 동료의사들에게 돌아간다. 고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고 의료 윤리의 네 원칙(자율성 존중의 원칙·악행 금지의 원칙·선행의 원칙·정의의 원칙)중 악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대원칙을 어긴 부분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 사건은 진료와 수술,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해 전문직 윤리와 의학 전문직업성이 훼손된 부분들이 발견된다. 1)수술 전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 부분 2)수술 후 촬영한 엑스레이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 않는 의무 소홀 및 책임감 결여 부분 3)진정성 결여문제 4)이해상충의 부적절한 관리 5)진실 말하기·환자이익 우선하기·동료평가의 무시 등이다.

윤리적인 문제 외에도 꼭 짚고 싶은 부분이 있다. 사건발생이후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소통'의 문제다. 사건 발생 후 환자의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공감의 표현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건의 발생 후 안 좋은 결과(장천공 및 심낭천공)의 원인을 환자의 부주의로 돌리는 듯 한 발언이 매스컴에 공개된 후 유족들과 모든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해 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이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소위'남 탓하기'다. "치료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환자분이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 "너무 과민반응하시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앞서 치료하신 의사분이 실수하신 것 같군요" 등이다. 설사 나쁜 결과의 원인이 의사가 아닌 환자의 부주의나 다른 동료의 실수일지라도 본인이 먼저 그렇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돼 의료사고를 격은 환자나 환자 가족들이 인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모든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쉽게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금물이다.

위급하고 난처한 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명확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지레 겁을 먹고 동료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비굴하게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답게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상황에 맞는 표현과 행동을 해야 한다.

오히려 위로와 공감의 표현으로 환자를 안심시키고 분노를 가라앉히는 몇 가지 예가 있다.
"이런 일이 있게 돼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희 의료진 모두 위로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환자분께서 상황을 이해하시도록 그 동안 진행된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환자분이 안심할 수 있도록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의사로 살아가며 본의 아니게 어려운 의료분쟁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의료사고나 의료과오가 발생했을 때 피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나 가족들에게 일어난 나쁜 결과에 대해 의사 자신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음 아프다는 위로와 공감의 표현을 먼저 해야 한다. 일명 '쏘리웍스(sorry works)'라고 한다.

전문가로서 당당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은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피해환자나 가족들을 안심시켜 줄 것이다. 적절한 표현으로 불안과 분노에 찬 피해가족의 마음을 헤아려 줄 때 어려운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신해철씨 사건을 돌아보며 가장 안타깝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의료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것과 함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순조롭게 풀어나가는 방법의 하나로 '쏘리워크'에 대한 교육과 자료가 회원들에게 제공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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