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9 11:38 (금)
청진기 메르스와 마스크

청진기 메르스와 마스크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5.06.29 09:09
  • 댓글 3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지금 진료중인 우리들은 꼭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어.
-요즘 소청과에선 의사가 마스크 착용하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대.
-메르스 발생지역에선 부모가 의사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왕따 당한다잖아.
-최근에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로 봐선 내가 꼭 중동의 낙타가 된 기분이야.
-근데 마스크 쓰는 것 힘들지 않아?

요즘 SNS에 떠도는 동료 의사들의 하소연이다.
메르스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코 밑에 바셀린을 바르고 고용량 비타민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많다. 거리는 한산하고 이따금씩 마주치는 사람들도 서로를 힐끔거린다.

삽시간에 유령의 도시가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진료실에 들른 환자들도 겨우 눈인사만 하고 더는 말이 없다. 아예 처방전만 내어 달라는 환자도 있다. 이러다가 문진이 생략된 채 진료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조선 후기에 호열자라는 역병이 돌았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당시엔 그 질병의 실체나 역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괴질이라 불리는 무서운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였다. 그것은 경상도 하동 악양벌판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사리 인근에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역병으로 가솔들이 다 죽어 넓은 들판의 곡식을 거둬들일 손이 없었다고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탄생 배경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바이러스의 실체도 증명됐고 전염경로도 파악된 상태이다. 병에 대한 예후도 모두 밝혀졌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전염성 질환은 이런 심리적 공포 단계를 거쳐 역학조사 등을 통한 통계학적인 근거를 확립한 후 비로소 의학적인 진료 체계가 확립된다. 전염병의 심리학은 심리적 안정감과 공포심 사이의 줄타기일지도 모른다.

메르스도 마찬가지다. 변종 바이러스는 출현하지 않았고 지역사회 감염이라 말하려면 좀 더 자세한 역학조사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고 백신 개발 가능성은 전무한 상태이니 현재로선 감염경로의 차단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는 의학이 아니라서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컴퓨터나 자동차처럼 일괄적으로 리콜을 시행하거나 일개 부속품을 교체함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저 질환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 사망한 사례가 보고됐고 이미 잠복기를 지난 상태에서 환자가 발생했으며 감염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환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진료하는 날들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엔 아직 메르스 확진 환자가 없지만 마스크 착용은 기약 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진료실에 들어선 환자들은 마스크로 중무장한 동네의사를 보고 깜짝 놀란다. 가까이 오지 않고 저만치 떨어져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잠재적 격리자로 오해 받는 것 같아 조금 서운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가만 보니 자신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난데없는 메르스 여파로 환자와의 거리가 조금은 멀어진 느낌이다.

게다가,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진료하자니 내 몸 여기저기서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평소 몸에 무엇인가 부착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나로서는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시계를 차지 않고 실눈을 뜰지언정 안경도 멀리하며 지낸다. 결혼반지는 딱 일주일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장신구는 꿈도 꾸지 못한 나에게 온종일 마스크라니!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꼭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다. 환자와 대화의 차단은 물론이요 어느 때는 내 자신과도 단절되는 것 같아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저 하루라도 빨리 마스크를 벗어 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이번 주가 고비라고 한다. 벌써 몇 번째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