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법안 심의 직전 보건복지위에 의견서 돌려
의원실도 "실효성 없는 입법, 약사 역학조사관 불가능"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감염병 관리법)'에 약사를 역학조사관으로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의료계로부터 '졸속 입법'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국회에서 감염병 관리법 개정작업이 착수되자, 대한의사협회는 법 개정작업이 철저히 의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충분한 논의와 심리를 거쳐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었다.
그러나 약사를 역학조사관으로 임명토록 허용하는 내용이 감염병 관리법 의결안에 포함된 과정을 국회 관계자들로부터 들어보니 의료계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였다.
복수의 여야 보건복지위원실에 따르면 대한약사회는 감염병 관리법 개정 논의 직전에 여야 보건복지위원실 등에 약사도 역학조사관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했다. 역학조사관 자격 기준이 '의료인과 공무원 등'으로 규정돼 있어 약사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취지였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은 25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보건복지부 관계자에게 의사도 아닌 의료인 즉 간호사, 한의사, 치과의사, 공무원도 역학조사관 자격이 있는데 약사는 포함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남 의원실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개정 전 법안에 의료인은 물론 공무원도 역학조사관을 할 수 있도록 돼있었다. 약사를 제외할 이유가 없었다"면서 "앞으로 역학조사관을 많이 늘려야 하는데, 업무 조건이 좋지 않고 보수도 많지 않아 의사 지원자만으로 수요를 충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법안소위에서 이 문제로 30분이 넘게 토론해서 결정했다. 역학조사관 대상에 약사를 포함했지만, 약사는 물론 의사라고 하더라도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의무화해, 대상은 늘렸지만 자격 기준은 강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모 야당 보건복지위원실 관계자는 "약사가 역학조사관으로 임명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의사 역학조사관의 지휘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일부 의사 출신 보건복지위원들이 문제를 제기했었지만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약대 교육과정에서 역학을 배우지 않은 약사들이 별도의 교육과 훈련까지 받고 역학조사관을 하겠다고 얼마나 나서겠는가"라면서 약사 역학조사관 입법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시인했다.
또 다른 여당 보건복지위원실 관계자도 "직업적 형평성 차원에서 약사 역학조사관 내용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약사 역학조사관이 감염병 발생 시 역학조사를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메르스 확산이 국가적 위기사태로 번지고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국회의원들은 충분한 의학적 조사와 법률적 검토 없이 감염병 관리법 개정안을 29개나 쏟아냈고, 의협의 졸속 입법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의와 전체회의 의결, 본 회의 의결까지 일사천리로 단 이틀 만에 법 개정작업을 마무리했다.
결국 '약사 역학조사관' 입법은 이익단체의 업무 범위 확대를 위한 움직임과 이를 충분한 사려없이 받아들인 국회의원들의 불성실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