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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1:36 (금)
'메르스'보다 무서운 것
'메르스'보다 무서운 것
  •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내과)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5.06.2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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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의료전달체계 왜곡...후진국형 병원 시스템 원인
사투 벌인 의료진·병원에 책임 묻고, 공무원 늘려 문제 해결?

▲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내과)
5월 20일 국내 첫 메르스 환자가 확진된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진행 중인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의 위기관리능력을 보고 있다.

관료적이고 무능한 정부, 여당·야당 할 것 없이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인들, 사실보다는 기사의 클릭 횟수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더 자극적인 내용을 쏟아내는 언론. 이들 모두가 똑같이 국민의 안위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불이 났다고 하면 모두가 힘을 합쳐, 현장에서 불을 끄는 사람들을 최대한 격려하고 지원하여 일단 불을 빨리 꺼야 한다. 불을 완전히 끄고 사태가 진정된 후에는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여 다음에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만약 다시 발생한다면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일일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는 초동대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고, 일부 정치인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치 쟁점화에 앞장서고, 국회의원들은 불을 끄고 있는 사람을 불러 놓고 왜 빨리 불씨를 잡지 못했느냐고 따지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기회로 삼고 있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려고 병원을 지키는 의사들, 심폐소생술을 돕다가 감염된 간호사, 병원이 폐쇄되어 망연자실하고 있는 직원과 경영진들. 메르스 사태는 근본적으로 의료현장의 문제임에도 이를 정치적 상황으로 변질시키는 대한민국에서 의료인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의료인은 배제한 채 표심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의료 관련 법안을 만들어온 국회,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건강보험정책을 맡겨온 정부.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메르스 전파가 쉽게 일어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적한 대형병원의 과밀한 진료환경과 통제를 할 수 없는 환자들의 의료기관 이용행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것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건강보험제도, 환자들의 무분별한 의료쇼핑을 막을 수 없는 의료 전달체계의 붕괴, 간병 때문에 보호자들이 병원에 상주해야 하는 후진국형 병원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료인들의 목소리에 한 번이라도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는가?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의료현장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고, 의료전달체계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책입안자들이 정부나 국회에 있는 것일까?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기보다, 편을 갈라 상대편을 공격하는 일에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들이 다시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가면 메르스 사태도 지나갈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 공무원 수를 늘릴 것이고, 국회의원들은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법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책임 대부분을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살리려고 사투를 벌였던 병원과 의료진들에게 돌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그것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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