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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원망·비난'에서 '존경·감사'로

메르스 '원망·비난'에서 '존경·감사'로

  • 이석영 기자 leeseokyoung@gmail.com
  • 승인 2015.06.1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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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의료진 고충 알려지며 여론 변화 시작
의협 활발한 대국회·대정부 활동도 환기 '한 몫'

▲대학병원 의료진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이번주 최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10일 오전 현재 메르스 확진자는 총 108명, 사망자는 9명으로 늘어났다. 보건당국은 메르스의 2차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들이 추후 방문한 병원들에서 새로운 감염 환자 발생이 없다면, 메르스 유행은 감소세로 접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반대로 추가 감염 환자들이 발생할 경우 메르스 확산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부는 확진자 및 확진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방문한 환자·가족을 대상으로 동선을 파악한 뒤 감염 의심이 우려될 경우 자택격리를 적극 조치하고 있다.

메르스 확진 환자를 치료중인 병원 의료진들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악전고투 중이다. 일주일 넘게 병원 전체가 격리된 대전 대청병원은 환자와 간병인을 모두 원내 격리시킨 채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메르스 환자와 접촉했던 의사 8명과 직원 50여명은 자택격리됐다. 절반 밖에 남지 않은 의료진이 2교대로 병원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건양대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감염내과 교수 4명 중 3명을 포함해 전공의·간호사 등 70여명이 격리된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의 체력이 이미 고갈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숨가쁜 내부 상황을 전했다.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은 말 그대로 전쟁터다. 기존의 모든 환자를 전원 조치하고 메르스 전담진료 체계를 세웠다.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과 행정직원들은 원내 장례식장에 임시 거처를 마련할 예정이다.

삼성서울병원은 14번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 모두 격리조치되면서 남아 있는 의료진의 체력은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를 진단해낸 공을 세웠으나 지금은 감염 확산의 주범으로 비난 받으며 의료진과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메르스 병원' 낙인...사실상 '폐업' 불가피

개원가의 고충도 크다. 7일 정부가 공개한 메르스 병원 명단에 포함된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평소 신뢰받는 '주민 건강 지킴이'에서 하루아침에 기피장소로 낙인찍혔다. 문제는 병원급 의료기관과 달리 영세한 동네 의원은 단 몇일 동안만 문을 닫아도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정부가 공개한 1차 명단의 오류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입은 병의원까지 나왔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완치 퇴원한 365열린의원 원장. 

의협 메르스 대응센터에 따르면 평택성모병원과 평택푸른병원은 피해규모 추산을 엄두 조차 못내고 있는 상황이다.

박애병원은 메르스 사태 이후 입원환자가 기존 215명에서 140여명으로 급감했다. 하루 평균 1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던 차민내과의원도 병원장과 직원들이 모두 자택격리 조치 되면서 17일까지 휴진에 들어가 적지 않은 손실이 예상된다. 

아산서울병원 역시 하루 130여명이던 환자가 현재 30∼40명으로 3분의 1 토막 났다. 무기한 휴진 중인 최선영내과의원은 "휴진 중 직원 급여 문제가 절실하다. 재개원 하더라도 의료기관의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 지었다.

메르스에 감염됐다가 지난 8일 완치돼 퇴원한 365열린의원 원장은 "확산을 막기 위해 병원 이름 공개는 꼭 필요하다"면서도 "다시 문을 열어도 환자가 올지 모르겠다. 병원 입장에서는 (병원 명단 공개가) 안 좋은 면이 많이 있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윤창옥내과의원 원장은 SNS에 글을 올려 "메르스 의심환자 내원 즉시 보건소 이송, 원내 소독, 간호사 자가격리 등 신속한 조치를 취했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메르스 병원'이라는 낙인 뿐"이라며 "억울한 피해를 입고 있는 의원을 널리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의협에 따르면 10일 오전 9시 현재 메르스에 감염된 의료진은 총 9명이다. 지역별로는 서울 5명, 경기 3명, 충남 1명이며 감염경로는 2차 4명, 3차 5명이다. 성별은 남자가 2명, 여자가 7명으로 각각 나타났다. 

'원망·비난' 여론에서 '존경·감사' 로...

병원과 의료진을 원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메르스 사태 초기와는 달리, 상황이 악화된 현재 여론은 의료진에 대한 존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메르스 환자를 은폐했다거나, 메르스에 감염된 의사가 이를 숨긴채 환자 진료를 보고 있다는 식의 근거없는 루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페이스북 등 SNS와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의료진을 격려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 ubiq***는 "당신들을 열심히 응원하고 격려를 드립니다. You are our heroes!"라고 응원했다.

닉네임 alfk***도 "의료진과 간호사분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포기 한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떻게 살까요..."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또 thre***는 "의료인이라고 무섭고 힘들지 않겠습니까. 모두 우리 가족들 입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를 전했다.

한 누리꾼은 "사람이 너무 피곤하면 면역력도 떨어질텐데, 로테이션 하면서 하게 할 수는 없나? 의료진이 감염되는 사고는 없었으면 좋겠다"(84yj***)며 안타까워 했다. 

 

'메르스 환자 신고 안하면 벌금형', '진료거부시 법적 조치' 등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정부도 이제는 의료계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9일 건양대학교병원에서 추무진 의협회장 등 의료단체장과 간담회를 가진 뒤10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 최전선에서 사명감을 갖고 헌신하고 있는 의료인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하자"고 말했다.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는 7일 "많은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이 메르스 환자 또는 감염의심자들을 기꺼이 진료하고 있다"면서 "국민들께서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진료하고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응원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의료계를 향한 인식의 변화는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사들의 비장한 모습과 더불어 의사단체의 발빠른 대응도 한 몫 했다는 평가다.

사태 초기부터 적극적 대응...국민에 신뢰감 줘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는 지난달 20일 메르스 최초 환자가 발생한 직후부터 사태를 주시하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국민의 메르스 불안 해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국민 입장 표명을 시작으로 메르스 의심환자 내원 시 행동지침, 메르스 관련 위기관리·대응지침 등을 배포하는 등 본격적인 대국민·대회원 홍보·안내·교육 활동에 착수했다.

국민건강보호위원회 산하에 신종감염병대응 TF를 구성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메르스의 실체와 대응 방법을 국민에게 알렸다. 병원협회와 정책협의회를 갖고 공등 대응에 나서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추 회장은 평택성모병원, 건양대병원 현장을 잇따라 방문해 현장 상황을 살피고 관계자들을 위로했다.

메르스 대책 관련 긴급 민관 합동회의에 참석해 의료계 입장을 전달했으며, 16개 시도의사회를 통해 일선 회원들에게 위기관리 대응 교육을 실시토록 했다.

의사 회원 약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메르스 대응센터 전문상담위원 교육을, 간호사를 대상으로 메르스 대응 교육을 각각 진행했다. 9일부터 자택격리자 및 가족을 위한 안내 콜센터인'메르스 대응센터'(☎1833-8855) 가동에 들어가 호응을 얻고 있다. 

 ▲의협 메르스 대응센터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 추무진 회장.

의협은 '메르스 극복을 위한 대국민 7대 권고사항'을 통해 기본적인 예방 수칙만 지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며 국민에게 용기를 줬다. 일선 회원에게는 동요하지 말고 진료현장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는 한편 억울한 피해를 입는 회원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의협, 대정부·대국회 발빠른 대응 돋보여

메르스 사태와 관련된 정치적 움직임도 긴밀하게 전개했다. 의협은 정부와 국회,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료계의 고충을 알리며 지원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추무진 의협회장은 4일 오전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메르스대책특위 전문가 좌담회를, 오후에는 추미애 최고위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긴급 좌담회를 잇따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추 회장은 메르스 밀접 접촉자 및 자가격리 대상자와 관련된 정보를 의료진에게 공개할 필요성과 의료인 대상 보호장구의 우선 지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8일에는 김춘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간담회를 갖고 신종감염병 예방을 위한 근본대책으로 보건복지부를 보건부와 복지부로 이원화하고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의 기능을 재정립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의협의 노력은 여야의 '초당적 협력'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7일 회동을 열어 메르스 사태를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고 협력을 약속했다. 특히 여야는 의협이 지속 요구했던 치료 및 격리 병원지원, 마스크·방호복 등 의료장비 및 물품구입, 검사비용 지원, 격리자 생계지원 등을 최우선 지원키로 합의했다.

정부에게는 사태 초기부터 메르스 관련 정보를 최소한 의료진에게는 공개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메르스병원 명단의 오류로 인한 해당 의료기관의 유무형적 피해에 대한 책임있는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의협회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표는 추무진 회장에게 메르스 피해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의협은 3일 보건복지부에 공문을 보내 "일선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인 입장에서는 진료과정에서 메르스 감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의료진이 감염에 대한 부담 없이 진료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정부가 정책의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총수가 협회 회관을 방문해 의협 회원들을 위로·격려하기도 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 당 고위 대표들은 10일 오후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을 찾아와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의협 집행진과 메르스 사태와 관련된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표는 추 회장에게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의 헌신에 감사드린다"며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는 병·의원이 경영 위기에 처하고, 성실하게 진료했던 의사들이 감염에 노출된 사례가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피해가 발생한 의료기관에 대해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며 이미 김용익·김성주 의원이 제출한 관련 법안들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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