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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태석 신부 쓰던 청진기·혈압계 유품 전시

고 이태석 신부 쓰던 청진기·혈압계 유품 전시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5.06.0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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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의대 12일 '이태석 신부 유품 전람회·기념 심포지엄'

▲ 인제의대 3회 졸업생인 고 이태석 신부는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에 입회,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의사이자 교육자로, 가톨릭 사제로 불꽃같은 삶을 산 고 이태석 신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품 전람회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동에 있는 인제의대 1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인제대는 고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톤즈 '돈 보스코 클리닉'에서 사용하던 청진기·혈압계·초음파 영상진단장치·의학교과서·환자 노트·의무기록지 등 유품을 12일부터 전시한다고 밝혔다.

고 이태석 신부의 유품 전람회는 지난 5월 27일 이병두 인제의대 의약부총장 겸 의대학장이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이사장 양승국 신부)와 장기 무상대여 협약을 맺으며 성사됐다.

인제의대 제3회(1987년) 졸업생인 고 이태석 신부는 1991년 군 복무를 마친 후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에 입회했으며, 1992년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 뒤늦게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1997년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 2000년 4월 종신서원을 하고 그해 6월 28일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 신부는 20년 넘게 종교와 인종 갈등으로 내전 중인 수단 남부지역의 톤즈마을에 정착했다. 손수 벽돌을 찍어 학교를 만들어 청소년 교육에 앞장섰으며, 진료소를 세워 한센병과 전염병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내 몸처럼 돌봤다.

자신의 건강은 뒷전으로 미룬 채 원주민들을 위해 헌신하던 이 신부는 몸에 이상증세를 발견, 2008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와 받은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곧 나아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 투병생활을 계속했으나 증세가 악화돼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48세의 젊은 나이에 하느님 품에 안겼다.

고 이태석 신부의 유품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상시 전시한다.

인제의대는 12일 전람회와 함께 '의사의 삶과 사회: 이타성과 책무성'을 주제로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기리는 '제5회 이태석 기념 심포지엄'을 연다.

심포지엄에서는 ▲의료봉사와 함께 한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30년 삶(고영초 건국의전원 교수·건국대병원 신경외과) ▲작은 이태석(박무열 부산 부민병원 외과장) ▲속·친구가 되어 주실래요?(강재명 캄보디아 헤브론병원 내과장) ▲파란 눈의 의사들을 통해서 배우는 이타성과 책무성(김현태 부산항운병원 외과장) 등 오랜 기간 의료 현장에서 묵묵히 사랑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의사들이 발표자로 초청, 이 신부의 삶을 재조명하고,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성찰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병두 의약부총장은 "인제의대 3회 졸업생인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초 인제대학교 개교기념일에 맞춰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면서 "이태석 신부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2013년부터 의학과 1학년 교육과정에 봉사 실습교육을 중심으로 1주일 동안 '이태석기념과정'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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