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그녀가 남겨준 '공감'의 의미
청진기 그녀가 남겨준 '공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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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8 11: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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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희 원장(인천 서구·연세엄마손의원 ·매거진 <반창고> 발행인)
▲ 전진희 원장(인천 서구·연세엄마손의원 ·매거진 <반창고> 발행인)

저녁을 막 먹으려던 찰라 울려오는 나의 호출기. 호출기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인턴, 뭐 하는 거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윗년차 전공의 선생님의 불호령이었다. 십 수년 전 여름. 내과 수련의가 나의 직업이었다.

의사 면허를 받고 첫 직장이자 교육의 연장인 수련의로서의 주요 업무는 환자의 소독·진료 준비·약물 투여·각종 검사 행위였다. 내과 소화기 암병동으로 항암 치료와 수술 후 내과로 전원돼 소독을 받는 환자들도 상당수 담당하게 됐다.

당시에도 수련의가 부족해 내과 중환자실과 병동을 전부 수련의가 담당하므로 상당히 많은 수의 환자 처치가 하루 동안의 내 몫이었다. 당일 오전에 모든 소독을 마치고 다른 병동의 일들과 중환자실 일을 마치고 간신히 하루의 한 끼를 채우려 하는 찰나에 날아든 전공의 선생님의 불호령은 내게 달갑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오전에 일일이 수첩에 체크를 해가며 소독을 했다. 소독기를 병동 간호실에 반납해야 하므로 오전에 꼭 하는 일이 환자들의 환부 소독이었다. 당일 내가 담당한 환자 중 한 분은 담낭암으로 항암제를 투여받으며 담낭에 관을 연결해 외부로 빼어 둔 여자분이었다.

내가 그 분을 소독하지 않았다는 것이 윗년차 전공의의 불호령의 이유였다. 그녀는 이미 수술도, 항암도 치료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말기 환자로 담즙으로 인한 악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시술을 받은 환자였다.

나는 다시 병동으로 내달렸고 간호사실과 확인하고 소독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윗년차는 환자가 화를 내니 소독을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이 환자분의 소독은 30여분이나 걸리는 복잡한 소독이었다. 며칠째 잠도 못 자고 밥 한 끼 못 먹은 내게는 매우 억울한 일이었다. 한 끼의 밥을 뒤로 한 채, 나는 소독세트를 집어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억울함과 피로와 배고픔에 소독 포셉을 들고서도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환부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왜 안 와요! 내가 얼마나 짜증나는지 알아요. 당신 뭐에요?"
소독하는 내내 연신 쏟아내는 그녀의 짜증에 나는 어느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침에도 소독했고요. 이렇게 오늘 두 번 합니다. 이제 그만 하시죠."
짐짓 화가 섞였지만 낮은 음성과 강한 어조로 난 그녀에게 대꾸하고는 인사도 없이 방안을 나왔다.

이어지는 일들과 호출기의 끊임없는 울림에 어느새 소독 사건도 잊은 채 식사도 하지 못한 분주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밤 11시경, 다음날 환자들의 사진을 챙기러 올라간 병동에는 갑자기 '코드블루'가 울렸다. 코드블루는 환자가 위급해 심폐소생술을 하게 된다는 경고음이었다. 병동에서 빠르게 튀어나오는 환자 침대 위에는 저녁에 소독으로 소란을 피운 그녀가 누워 있었다.

그녀의 배에는 여전히 튜브가 달린 상태로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다. 윗년차 선생님들과 나는 간호사실 옆의 심폐소생실에서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수십 분을 시도했지만 그녀의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암 말기로 소극적 심폐소생술을 동의했기에 더 이상 진행은 무의미했다.

그녀를 의사로서 만난 건 한 달 남짓, 말기 환자라 증상의 악화로 황달을 견디기 어려워 입원한 상태였다. 그녀도 이미 자신의 갈 길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의사로서 그녀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의 하루하루가 남들과 조금 더 다른 일분일초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독 사건으로 인해 잠시나마 그녀에게 좋은 감정으로 대하지 못했고 결국 그녀에게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뒤돌아 나왔다.

의사와 환자는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가 최선의 노력을 하지만 때론 병과 죽음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지쳐가며 서로를 이해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질병이라는 존재 앞에 무력해진 의사도 두려움이나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환자는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에게 화가 나거나 짜증을 내게 된다. 이런 감정들이 서로 부딪치며 관계는 무너지기도 한다.

의사와 환자는 분명 서로 같은 길을 동행하던 동반자였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험한 길을 가던 동료임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감정들은 의사와 환자가 서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이라는 슈퍼갑에게 의사와 환자가 모두 무력해지는 순간, 서로를 향해 날 선 시선으로나마 그 무력감을 해소하려는 전환의 행위는 아닐까?

이럴 때 서로의 행위를 통해 전해지는 아픔을 먼저 공감하면 어떨까?

나의 소싯적 행위는 그녀의 아픔과 무력감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녀의 가는 길에 손잡을 여유가 없었던 나의 수련의 시절의 이 사건은 내게 큰 교훈이자 아픔이다.

의사는 누구나 '질병'을 치료하고 환자가 회복된 삶으로 돌아가길 소망한다. 그것이 의사라는 직업의 존재 이유이기에 필연적으로 가져야 하는 책임감과 사명감이다. 의사들이 가진 사명감이 약해지거나 변했다기보다는 의사들에게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으로 '공감'을 표현하기 어렵게 됐다.

질병의 진단과 치료와 함께 환자에게 인간적인 공감으로 충분한 위로를 주지 못하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참으로 안타깝다. 십수년을 훌쩍 지난 지금도 의사들은 여전히 쫓기는 시간과 과중한 업무 속에 '공감'이라는 시간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여전히 환자의 떠나감에 아파하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킨다.
하지만 나의 환자에게 이런 마음을 표현할 시간이 점점 더 줄고 있다는 현실이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손실로 다가온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공감을 할 여유를 허락하는 선한 의료 시스템을 소망하며 오늘도 가만히 나의 '그녀'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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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2015-06-14 15:39:11
정말 공감가는 일화네요..저의 내과 인턴 생활도 그런 일과의 연속이었죠. 소독하고 CPR하고..그래도 의사라서 환자에게 해줄게 하나라도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요.모두들 힘들겠지만 우리 모두 화이팅합시다.

배성범 2015-06-10 11:29:40
전환이 아니라 '투사'에 가까울거 같아요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