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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수술 후 페치딘 처방..."사망 원인으로 볼 수 있어"
뇌수술 후 페치딘 처방..."사망 원인으로 볼 수 있어"
  • 최원석 기자 cws07@doctorsnews.co.kr
  • 승인 2015.05.2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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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혈관모세포종 제거술로 인한 사망에 병원 책임 40% 인정
"뇌수술 환자에게 호흡억제 효과 있는 페치딘 투여 신중했어야"

뇌혈관에 붙어 자라는 종양인 혈관모세포종 제거술을 받은 뒤 20일 만에 사망한 환자에 대해 병원의 책임이 있었다는 판결이 나왔다. 수술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지만 마약성진통제인 페치딘을 투여한 것이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재판부의 판단이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최근 혈관모세포종 제거술을 받고 사망한 이모 씨의 유가족들이 서울 A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의료진 책임 40%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씨는 2005년 A병원에서 혈관모세포종 진단을 받아 감마나이프 방사선 수술을 받고 추적 관찰해 왔다. 이후 2012년 6월 이 씨에게 혈관모세포종이 재발이 확인됐고 7월 2일 A병원에서 후두하 개두술 및 종양 완전 절제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이 씨의 상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이틀 뒤 새벽 이 씨는 간호사에게 불편감을 호소했다. 이로 인해 새벽 5시에 투여할 예정이던 정규처방 진통제인 케로민을 시간을 앞당겨 3시경 투약했다. 20분 후에도 이 씨가 두통과 불편감을 호소했고 간호사는 의사가 필요 시 판단에 의해 투여하라고 처방한대로 마약성진통제인 페치딘을 투약했다.

곧 이 씨의 통증은 호전됐고 간호사는 불편감이 증가하면 알릴 것을 안내한 후 병실을 나갔다. 30분 뒤 이 씨의 입술에 청색증이 발생했고 자가 호흡·경동맥 맥박이 없었다.

뇌 CT 검사 결과 1차 수술부위 부위에서 약간 위쪽에 위치한 소뇌에 출혈이 발견됐다. 2차 수술을 진행했지만 소뇌 경색이 발생해 뇌간을 압박하고 전체적인 부종이 심해져 뇌실이 압박받는 상태에 이르렀다. 의료진은 혼수 요법·7일가량의 저체온 요법 등의 조치를 했으나 7월 20일 이 씨는 뇌사로 판정돼 사망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1차 수술 과정의 과실 ▲병변 악화 가능성이 있는 케로민·페치딘 투여 ▲추가조치 미흡 등의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수술 과실 없지만 페치딘 투여가 사망 원인"

1차 수술과정에서의 의료과실 여부는 1·2심 재판부 판단이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수술부위와 다른 위치인 원인으로 가 아닌 곳에 출혈이 발생한 것의 원인기전이 분명하진 않으나 의료과실인 과도한 뇌척수액 제거·수술 중 과도한 고개 회전 등으로 설명된다"며 "의료진은 불가항력적 합병증이라 주장하지만 의료과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타 위치인 소뇌 출혈에 대한 원인으로 과도한 뇌척수액 제거·수술 중 과도한 고개 회전 등이 원인기전으로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수술 과정에서 의료진이 해당 의료과실을 저질렀음을 추론 할 만한 정황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이 부분을 기각했다.

마약성진통제 페치딘 사용에 문제가 있었음은 두 재판부 의견이 일치했다.

1·2심 재판부는 "마약성진통제인 페치딘은 중증 호흡억제 효과가 있기 때문에 두개내압 상승과 관련된 환자에게는 투여가 금지돼 있어 이 씨와 같이 뇌수술을 받은 환자에게는 사용에 신중했어야 함에도 간호사 판단 하에 페치딘을 투약해도 무방하다는 내용의 처방을 미리 내렸다"며 "페치딘의 호흡억제 작용으로 말미암아 출혈이 악화되고 뇌압의 상승해 심폐정지에 이르러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1·2심 재판부 모두 나머지 원고 주장은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의료진 책임 비율을 50%로 보고 8억 9000여만원의 배상을 판시했지만 2심에서는 1차 수술과정에서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아 책임 비율 40%, 7억 1000여만원으로 배상을 제한했다.

"사망 원인 페치딘으로 보는 것 의아해"

원고 측 변호를 맡은 이동필 변호사(법무법인 로앰)는 "이번 판결의 취지는 마약성진통제를 처방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임에도 다른 조치 없이 뇌수술 환자에게 금지된 페치딘을 처방한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A병원 측 변호인은 "2심 재판부에서 1차 수술에서의 의료과실이 없음을 인정했다는 점은 환영하지만 환자의 사망 원인을 페치딘으로 보는 것에 의아하다"며 "약품설명서에는 가능성이 희박한 부분까지 언급돼 있는 경우가 많다. 뇌수술 환자에게 페치딘을 처방하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A병원의 상고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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