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 4.0 독자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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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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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 황 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아이디어를 처음 갖고 나서 글을 쓰기까지 며칠 안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때도 있다. 무엇부터 써야 할지 첫 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책상 앞에 앉아 쥐어짜기 보다는 일어나 돌아다니곤 한다.

부엌에서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하고 창고를 뒤척이기도 하다가 아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선다. 근처 산책로를 걷다가 공원의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기도 한다. 그래도 마땅한 글이 생각나지 않으면 그날은 아예 포기하고 영화관을 찾아 상영 중인 아무 영화나 보고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이광국 감독의 <꿈보다 해몽>을 보았다. 신동미가 주연 연극배우로, 유준상이 형사로 출연하고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 내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수련의 생활을 했던 데서 길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곳이라 더욱 눈길이 갔다.

평일 오후 두 시 대학로의 공연장에서 배우 네 명이 연극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홍보와 티켓을 담당하는 동료가 와서는 공연시간이 되어도 관객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알린다. 전적으로 자신의 홍보 부족이라고 그가 몹시 미안해 한다. 네 명 중 주인공 여배우는 속상해하며 공연장을 박차고 나간다.

쓸쓸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예전처럼 편하게 만날 수가 없다. 게다가 성공해서 유명해진 옛 극단 동료는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고작 "꿈자리가 사나우니 조심해"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 무작정 향한 공원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마음을 달래던 그녀 앞에 문득 한 형사가 나타난다.

형사는 근처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을 정리한 후 공원에 들른 참이다. 우연히 어젯밤 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이 둘은 소주를 나눠 마시며 답답한 심정을 나누게 된다.

무명 연극배우의 넋두리를 듣고 형사가 묻는다.
"그렇게 힘들고 돈도 안 되는데 어떻게 버티나요?"

"처음엔 연기가 그냥 좋아서 시작했고요. 어느 날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났어요. 무대에 서면 걱정과 잡념이 없어지고 내가 누군지 의식을 못하죠.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짜릿하고 좋더라고요. 그런 순간이 많으면 좋겠단 생각에 이렇게 해 오고 있어요."

벤치에서 나누는 두 배우의 대화가 참 자연스러워 좋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언제나 느끼지만 사람의 뇌는 뜨거운 쇳물과 같다. 뜨거울 때 빨리 틀에 부어야 하는 쇳물처럼 생각을 빨리 글자라는 거푸집에 부어야 하니까 말이다.

손목과 손가락이 아파오는 것은 상관없다. 눈앞이 뿌얘지고 뒷골이 당길 때까지 그냥 두들긴다. 수필이건 논문이건 글에 몰두한 그 순간만큼은 걱정과 잡념이 없어지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니까. 그렇게 원고가 완성되고 투고하는 메일을 보낼 때 얼마나 후련한지, 원고의 최종 게재 확인을 알리는 연락을 받을 때 또 얼마나 짜릿한지….

공연시간이 되어도 관객이 나타나지 않을 때 연출자와 배우가 절망하듯이 출간된 내 글을 독자들이 읽어주지 않고 인용해 주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 누가' 읽어주고 동감해 주리란 희망을 갖고 나는 오늘도 힘든 작업을 해가며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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