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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공감, 서로의 다른 시선을 공유하라

청진기 공감, 서로의 다른 시선을 공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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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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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희 원장(·인천 서구·연세엄마손의원 ·매거진 <반창고> 발행인)

▲ 전진희 원장(·인천 서구·연세엄마손의원 ·매거진 <반창고> 발행인)

환자는 '아프다'라는 느낌으로 병원에 오게 된다. 환자가 호소하게 되는 '아픔'은 환자에게는 감정이다. 평소 환자가 겪어 보지 못한 생소하면서 두려운 감정인 '아픔'은 달갑지 않다. 환자는 자신의 이 낯선 감정을 의사에게 표현해 해결하기를 원한다.

그 해결의 첫 과정으로 환자는 아픔의 감정을 의사에게 표현한다. 의사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으로 반응한다. 그럼에도 의사가 환자에게 주어야 할 공감은 '감정적'이지 않다. 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객관화라는 과정을 거쳐서 공감하게 된다. 증상을 주관적 증상과 객관적 증상으로 분리해 인지하게 된다.

의사의 공감은 환자에게 위로를 전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자신의 머릿속에 담긴 의학적 지식체계를 따라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반적인 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과정과 공감의 차이는 때론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원활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겨울의 어느 날, 병원을 찾은 환자는 오랫동안 멈추지 않던 기침으로 인해 다른 병원에 다니던 6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오랜 기침으로 흉부 근육통과 기침할 때마다 찾아오는 요실금으로 많은 불편을 겪고 있던 터라 진료 대기 시간 조차도 매우 불편한 듯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죽을 거 같이 기침하느라 며칠째 잠도 못 잤어요."

내게 외치듯 꺼낸 그녀의 말은 적잖이 짜증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아픔이 그녀를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고 있음을 공감했기에 만남의 시작부터 내 머릿속은 기침과 관련된 각종 의학 서적의 내용을 급히 찾고 있었다.

나는 진료의 의학적 지식 과정을 따라 문진을 시작했고, 청진기를 집어 들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말을 하면서도 답답한 듯 기침을 하는 그녀의 숨소리에는 옅은 색색거림이 묻어났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숨이 찬 듯했다.

내게 주어진 진료 시간은 불과 수십 분 이었기에 그녀에게 기침에 관한 질문을 빠르게 이어갔고, 청진을 하고 그녀에게 흉부 엑스레이 촬영에 관해 설명했다. 그녀에게 짧은 시간 안에 의학적인 설명을 전하느라 내 머릿속과 마음속 감정은 온전히 그녀의 질병과 빠른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

"선생님 너무 하시네요."

다음 진료 과정을 준비하려던 내게 그녀의 한마디는 충격적이었다. 난 성심을 다했고 그녀에게 친절하고 충분한 설명으로 진료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제가 어떻게 불편하게 했을까요?"하고 묻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나의 의학적 지식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제가 아픈지 오래라구요. 힘들다는 말씀드렸잖아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아차했다. 나의 공감이 그녀에게는 냉정함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의사의 관점에서의 공감은 최선을 다하는 진료와 객관적이고 의학적 바탕에서 표현되는 진료의 결과물이다. 반면 환자의 공감은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는 한 사람의 감정과 표현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감의 인지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고 의사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어느새 환자는 의사에게 서운함을 갖게 된 것이다.

많은 의사와 환자가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질병이라는 낯선 조건과 아픔이라는 감정을 갖고 만나게 된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반드시 과학적이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이 '환자의 시선'에서는 냉정한 의사로 비칠 수 있다. 그렇다면 환자가 원하는 대로 의사가 환자를 주관적인 아픔의 위로와 공감으로만 대한다면 환자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선, 의사는 환자에게 주어진 주관적 증상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잃게 된다.

의사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공감에 선행해 환자의 질병 자체를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결과물을 따라 치료의 과정을 만들어 가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환자에게 반드시 선행해야 할 당연한 일이 바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환자에게는 이런 과정이 의사가 주관적인 공감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어머니, 숨이 차신 게 보여서 제가 마음이 급했어요. 빨리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이제 편안해지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할 테니 사진을 찍고 오시겠어요?"

그녀는 이제야 안도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엑스레이 촬영실로 향했다. 사진을 설명하며 내 손은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는 주관적인 공감을 표현했다. 진단의 결과와 치료의 과정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표현됐지만 그녀를 향한 나의 손이 표현한 공감이 다행히 그녀의 '공감'을 만족시켜 준 듯했다. 지금도 그녀는 겨울마다 우리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 원장님"이란 표현을 잊지 않는다.

의사와 환자는 반드시 공감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가 단지 환자가 원하는 주관적인 공감만을 표현한다면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의사는 환자의 다른 사고의 체계를 이해하고 성심을 다하는 그 마음을 환자에게 전달하고, 환자는 그런 의사의 마음을 보는 눈을 뜨는 것이 환자와 의사의 공감의 시작일 것이다. 환자 또한 의사의 다른 사고 체계와 입장을 이해하며 왜곡하지 않고 의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병원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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