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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길 배웅하는 참의사
생의 마지막 길 배웅하는 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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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0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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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택한 길은 '봉사의 길' 어릴적 꿈 이뤄 기뻐"
정미경 (전진상의원 호스피스 담당의)
의사로서 남다른 길을 가보고 싶었다고 담담하게 소회하는 여의사가 있다. 전진상의원에서 생의 가장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호스피스 담당의로서 18년 세월을 감내해온 의사 정미경.

무릇 의사의 길은 본래부터 봉사직이라고 말하는 그를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어느 봄날 시흥 다세대 주택가 사이에 소담히 위치한 전진상의원에서 만났다.

 

 

'이런 분들은 언제라도 상담실 문을 두드려주세요. 약값이나 진료비 때문에 치료를 계속하기 힘드신 분, 가정상담·진료상담·법률상담이 필요하신 분, 아이의 교육비 감당이 힘드신 분, 생계의 위험에 처하신 분.'

입구의 안내문처럼, 가난한 이들의 희망이자 벗이 돼준 전진상의원은 고 김수환 추기경 요청으로 1975년 시흥동에 둥지를 틀었고, 지난 40여 년간 진료소와 약국 운영, 빈민 가정방문, 유치원과 공부방, 재가노인복지, 가정호스피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등으로 활동을 지속해왔다.

'온전한 봉헌(全), 참 사랑(眞), 늘 기쁨(常)'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국제가톨릭형제회(A.F.I)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약사들이 의원과 복지관, 약국을 운영해오고 있다. 주변 산동네는 고층아파트로 바뀌었고 이제는 좀 '살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 전진상의원·복지관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가난한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전히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신적·정서적·육체적으로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일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1996년 국제가톨릭형제회에 입회했고, 그 이후로 이곳 전진상의원에서 살아왔으니 벌써 18년 정도 흘렀네요."

그는 1985년 이화의대를 졸업하고 이화대학병원·가톨릭의대 부속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1997년부터 전진상의원과 함께하고 있다. 벨기에 출신의 간호사로 한국에서 의사가 된 배현정 원장이 전진상의원을 이끌어오던 터에 함께 일해보자고 권유한 것이 시작이었다.

"가정의학과를 전공하고 나서 용인정신병원에서 신체적·정신적 질병이 있는 분들을 돌봤고, 잠깐 2년 정도 개원도 해보았지만,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어요. 의지할 동료도 없이 혼자 하려니 막막하기도 했고, 때마침 수련의 때 선배였던 배현정 원장님이 함께 좋은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 제안을 해주셨죠."

호스피스는 현대 의학으로 가능한 치료를 모두 시행해도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편안하게 생을 마치도록 돕는 의학적·정서적·종교적인 보살핌이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은 전국 56곳, 병상 수는 900여 개에 불과하다.

호스피스 전담 의사·간호사뿐 아니라 사회복지사·성직자·약사·자원봉사자 등이 팀을 이뤄 환자를 돌보는데, 환자에겐 최대한 통증을 덜어줄 수 있도록 적절한 진통제를 처방하고 성직자와의 만남을 통해 정서적으로 격려한다. 호스피스의 대상은 여생이 수개월(보통 3개월)로 진단되는 환자로 국내에선 주로 말기 암 환자들이다. 전진상의원은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호스피스가 가능한 사회복지기관으로 2008년 10개 병상도 꾸렸다.

빈곤의 악순환 끊는 의료복지에 힘써온 전진상의원

 

호스피스 담당의로서 많은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해왔다. 그에게 전진상의원에서의 활동은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의 해결이나 병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와 사회복지를 결합시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려는 노력이다. 병을 가진 환자들 뿐 아니라 병을 가진 환자로 인해 도미노처럼 붕괴되는 가정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활동 영역을 넓힌 것이다.

악순환과 대물림의 고리를 끊는 작업을 위해 가장 시급히 돌봐야 할 문제를 '건강'과 '교육' 문제로 보았고 그런 배경에서 의료와 복지의 통합 지원에 힘써왔다. 의료 활동을 비롯 양육비 지원, 생계비 지원, 장학금 지원 등 더 넓은 차원의 의료복지로 자리 잡아 나갔다.

유치원과 공부방을 운영하며 환자 가족의 자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가정을 직접 찾아 나서고 가족을 살피기 시작했다. 전진상의원이 전개하고 있는 '의료복지'·'의료사회사업'은 의원이 문을 연 4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드문 활동으로,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돌보면서도 가정해체를 예방하는 이상적인 활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사회복지사가 세 분이나 있습니다. 치료를 할 때 단순히 약만 주는 것이 아니라 복지사가 직접 집을 방문해 가정 환경과 가족 내의 상황을 파악하고 환자들이 설명하는 것 이상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합니다. 치료를 할 때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가족까지 함께 돌보려고 노력하죠."

그는 30대의 젊은 남자가 간에 퍼져있는 암으로 3개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던 때를 떠올렸다. 잘 못 듣는, 모자란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던 환자는 실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형에게 받은 학대로 잘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됐던 것. 봉사자들이 혼자 나와 살던 환자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춥지 않은 곳으로 옮겨줬다. 방문해 돌보아주고 식사도 만들어줬다. 평생 처음 경험한 사랑과 돌봄 덕분이었을까. 그는 다시 공장에 나가 일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2년 가까이 더 머물다 갔다고 했다.

호스피스 담당의다 보니, 하릴없이 생의 마지막을 보아야 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다.

"처음에 그 절망감은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2층 입원실에 있는 환자가 괜찮을까 잠 못이루는 밤도 많았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무뎌지는 느낌이었지만, 의사가 불안해하면 환자들도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고 더 힘을 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경험을 쌓아갔고, 이제는 아픈 환자들은 물론 까다로운 보호자들에게도 친근하게 말을 건넬 줄 아는 의사가 됐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함께 하는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 직원들, 봉사자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주하는 의사가 단 둘인 전진상의원에서 그는 정말 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그 마지막이 아름다울 때, 가족까지 모두 행복한 마지막이었고 그래서 참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네줄 때 더없이 큰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의사의 길은 근본적으로 봉사의 길이다

"대학원에서 생명 윤리를 공부하면서, 우연히 눈에 확 들어온 한 줄이 있습니다. 바로 '의사라는 것은 본래가 봉사직'이라는 구절이었죠. 내가 지금 택한 길은 근본적으로 봉사의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었고, 또 많은 의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이 한 줄을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학생 때부터 생명윤리와 의학윤리를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봤어요."

문득 전진상의원에서의 18여 년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의 꿈이 궁금해 졌다.

"6남매의 맏이로 살아왔고 운 좋게 의사가 되면서 무의촌 같은 어려운 곳의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서울에서 가장 어려운 곳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우면서 지내고 있으니, 꿈을 이룬 셈인가요. 하하."

다른 이들의 마지막을 돌보면서,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한 까닭일까. 안타깝게도 현재 그는 암 발병으로 외래 진료를 쉬고 있다. 아직은 항암약이 반응을 하고 있다며 환한 웃음으로 취재에 응해준 그의 건강과 쾌유를 빈다.

글·사진 정지선 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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