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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분만실은 사회의 거울

청진기 분만실은 사회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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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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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 최규연(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고민 끝에 나는 마침내 <의협신문> 청진기 컬럼에 글을 연재하기로 결정했다.

산부인과 의사로 살다보니 의학논문을 쓰는 것 말고는 달리 글쓸일이 없다보니 부족한 필력으로 이런 글쓰기는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쑥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치기가 아쉬워 두려움 따위는 접어두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소녀를 꿈꾸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행복감을 느끼고 싶기도 했나 보다. 첫 번째 칼럼을 쓰기까지 여러 날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해야 했다.

도무지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어떤 문체로 써야할지도 고민됐고, 내가 쓰는 글이 많은 의사들이 읽으면서 가치가 있다고 느낄지, 공감할지, 아니면 비판거리가 될지 두려움이 앞서 쓰다 말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네 번째 칼럼을 쓰게 되면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일상과 고민 등에 대해 나름대로 솔직하게 보여주자고 결정하니 홀가분해졌다. 24시간 열려있는 분만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사회의 모든 면을 투영하고 있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분만에 대처하는 산모와 가족들의 자세와 이에 대처하는 의료진의 태도, 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의 대처와 해결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보는 기쁨, 이 모든 것을 제약하는 의료제도의 모순 등을 짜맞추다 보면 과거와 현재의 우리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현실을 보게 된다.

프랑스의 응급의학과 의사인 파트릭 펠루는 자신의 저서인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응급실은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글로 책의 서두를 연다. 이 글을 읽으면서 20여년을 산부인과 의사로서 지낸 경험으로 분만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야말로 그 사회의 거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비해 현재의 사회가 다양성을 추구하고 또한 그러한 다양성이 당연시 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획일화된 강요와 제도들이 은근히 횡행하고 있는 상황이 분만실에서 투영되고 있다. 분만실에서 산모와 의사 모두 다양성이 없는 하나의 선택만 강요당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전공의 시절인 1990년대와 2015년 현재의 분만실은 산모의 분만에 임하는 자세와 가족들의 요구, 의료진의 태도 등 너무나 급격한 변화가 있어 의료현장에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이로 인한 현상 중의 하나로 산모들의 인식변화와 이에 대처하는 의료진의 자세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제도와 수가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상태로 진료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괴리감과 좌절은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유례없는 경기 침체로 전반적인 소비 위축에도 유독 유아용품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생각한다.

많아야 두 아이, 평균 한 아이 출산이 일반적인 오늘날, 분만도 뭔가 특별하고 편안한 환경을 찾는 산모들이 늘고 있고, 그들의 요구는 다양하고 매우 구체적인데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수가와 획일화된 제도에 맞추다 보니 분만실을 운영하는 병원과 산부인과 의사들은 죽을 맛이다.

산모 개개인의 특성도 다르고 치료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누구에게나 똑같은 진료와 치료를 하라니! 산부인과 의료진의 사기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가 "주여, 뜻대로…"라고 부르기를 바라기만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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