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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부족' 밑밥...의대신설 본격화되나?

'의사 부족' 밑밥...의대신설 본격화되나?

  • 이석영 기자 leeseokyoung@gmail.com
  • 승인 2015.04.1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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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연 "의사 부족" 90년 초 정부 연구기관 주장 판박이
90년대 무려 9곳 의대 신설..."사전 정지작업 가능성 커"

▲ 2013년 12월 5일 영하의 날씨에 관동의대 한 학부모가 대한의사협회 앞마당에 서 관동의대 부속병원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였다. 관동의대는 '부실의대'의 대명사 서남의대와 함께 1990년대 신설된 의대 9곳 중 하나다.

오는 2030년경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최대 1만 명 부족할 것이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연구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보사연의 연구방식 자체가 잘못됐으며, OECD 국가의 의사밀도 조사 등 다른 통계·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의사 부족이 아니라 공급과잉이 우려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의료계는 특히 보사연의 발표 시점에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그동안 의사 수 부족을 언급한 일부 연구자나 단체 등은 있었으나,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정부산하 연구기관이 공개적으로 의사 수 부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7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전후로 전남 지역 등 지역구에서는 의대 유지 공약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실제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순천대 의대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박지원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표는 목표대 의대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경상북도는 지난 3월 안동대학교에 의과대학 설립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충청남도, 인천광역시의사회, 창원시 등 지자체들도 최근 2∼3년 동안 지역 내 의대 신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분위기는 의과대학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1990년대 당시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1992년 초 서울시립대 등 전국의 15개 대학은 교육부에 의대 신설 및 정원증원을 요청했다. 대한의학협회(대한의사협회의 과거 명칭)는 의대 신설 반대 투쟁에 즉각 돌입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그해 6월 의협은 긴급 시도의사회장 회의를 열어 "현재 의료인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며 국민보건향상을 빙자하여 의사를 양산함으로써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려는 기도를 단호히 배격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 긴급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현재 32개 의과대만으로도 정상적인 의학교육을 수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의대를 신설하려 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의대 신설 승인 불가를 촉구했다.
 

▲ 보건사회연구원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00년 대비 2010년 인구 증가율(7.5%)보다 의사 수 증가율(40%)이 약 5배 정도 높다. 현 추세대로라면 2020년경에는 의사인력의 초 공급과잉이 우려된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언론 보도가 집중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 그 시점이다. 보건사회부는 1992년 10월 일선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며, 서울시 산하 4개 시립병원에 전문의가 태부족하다는 주장도 잇따라 나왔다.

결정적인 것은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발표였다. 보건사회부 산하 한국의료관리연구원은 1992년 11월 '병원병상 공급확대에 따른 병원 의사 및 간호 인력 수급'이라는 논문을 공개하고, 지방병원·중소병원의 앞으로 3년간 전문의 부족률이 100%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와 언론 보도에 힘입어 교육부는 1994년 9월 13일 강원대·서남대·건양대·관동대 등 4개교에 각 정원 50명의 의과대학을 신설키로 최종 확정했다. 이후 성균관대·을지대·포천중문의대가 1997년도에, 가천의대가 1998년도에 잇따라 신설됐다. 1991년 대구효성가톨릭의대까지 합치면 90년대에만 무려 9곳의 의과대학이 신설됐다.

의대 신설의 열쇠를 쥐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태도 변화도 관심의 대상이다. 복지부는 최근까지 의대 신설과 관련한 일체의 공식 언급을 자제하고 암묵적으로 '불가'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언론을 통해 "중장기 인력수급 추계를 통해 현재 의료인력이 적정한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어느 지역에 의대를 신설하는지는 교육부 소관"이라고 밝혀 모종의 입장 변화를 암시했다.

의대 9곳이 무더기 신설된 90년대 보건사회부도 의대 신설 및 입학정원 확대 불가 입장을 줄곧 고수하다 1994년부터 방침을 바꿔 의대 신증설을 적극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전력이 있어, 현재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과대학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20여 년 전 상황과 지금이 매우 비슷하다"며 "보사연의 '의사 수 부족' 연구결과 발표는 의대 신설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과대학 신설은 재정난 해소에 목마른 지방대학과 지자체의 대중영합주의, 정부의 의사인력 수급에 대한 그릇된 정책 판단, 삼박자가 맞아 이뤄져 왔다. '국민의 건강'은 고려되지 않는다"면서 "서남의대 사태처럼 부실한 의대 교육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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