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이유
청진기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이유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5.04.13 1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진희 원장(·인천 서구·연세엄마손의원·매거진 <반창고> 발행인)
전진희 원장(·인천 서구·연세엄마손의원·매거진 <반창고> 발행인)

의과대학에서 4년을 공부하면 반은 의사와 마찬가지라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큰소리치곤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의대에서 배우는 질병은 '교과서 속 질병'이다. 이는 병태생리에 완벽하게 일치돼 발생하고 증상도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 그대로이고, 치료도 교과서 내용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과서를 다른 시선으로 본다면 현실과는 일치되지 않는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뇨 환자가 병원에 내원했다고 생각해보자.

당뇨환자는 다음(많이 마시고), 다뇨(소변을 많이 보고), 다식(음식을 많이 먹고)이라고 교과서에서 기술한다. 그리고 식후당을 검사하면 200이상, 공복당은 114이상이 나오면 당뇨라 진단한다고 교과서에 실려 있다.

내가 그 환자를 만난 것은 3~4년 전인 듯 하다. 그는 발가락 사이의 염증으로 내원했다.
그의 발가락 사이는 진 무르고 갈라져 이미 속살이 드러나고 궤양이 되어 상당한 통증을 수반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체형은 마르고 제법 운동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발은 염증이 상당히 진행돼 통증을 수반한다고 예상됐지만 그는 통증이 미미하다는 반응이었다.
"제가 참을성이 좋거든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처음에는 아무런 의심의 소지가 없어서 상처 치료에 전념했다.

그러나 7일간 매일 소독을 해도 그의 발 진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치료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혹시 물을 지나치게 많이 드시거나 소변을 자주 보시나요?"
"아니요. 전혀!"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당신의 상처는 소독만으로는 나아지지 않아 전신 질환을 생각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했고, 발 상처로 왔는데 여러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는 그를 진지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건강하신 건 알겠지만, 발 상처가 낫지 않는데다 통증을 전혀 느끼시지 않는 것은 이상 신호입니다."

그에게 당뇨라는 질환으로 먼저 설득할 수도 있었지만, 갑작스레 닥칠 만성 질환에 대해 적잖이 당황할 것을 느낀 나는 다른 방법으로 그를 설득했다. 우선 그에게 소독을 위해 아침 공복 시간에 내원하도록 했고 손가락 끝 채혈로 당을 측정했다. 200가까이 측정된 당은 당뇨일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그는 종합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 결과, 그는 당뇨 진단을 받았고 당을 조절하며 발을 치료하게 됐다.

한 달이 넘는 치료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발가락의 손상은 크게 없이 상처의 흉만 남은 채 치료를 완료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는 우리 병원에 내원해 당뇨약을 처방 받는다.

또 다른 환자는 관절에 물이 찬다며 내원했다. 이미 대학병원에서 물이 찬 관절을 여러 번 수술해서 여기저기 흉터가 많았다. 그에게 질문하며 진료를 하던 내게 가장 큰 의문은 "왜 자꾸 물이 찰까?"였다. 다른 병원에선 관절을 많이 사용해 그럴 것이라 했지만 내게는 의문이었다.

나는 그분에게 혈액 검사를 권했고, 그에게는 류마티스 인자 양성 소견이 나왔다. 남자 환자이고 아침에는 관절의 뻣뻣함도 없고 작은 관절은 모두 정상이며 무릎과 발목, 발가락에만 물이 차기에 전형적인 류마티스 관절염은 아니었다.

두 사건에서 나는 "왜?"라는 질문과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지속적으로 질문했다.
진료를 하다 보면 대개 질환의 양상이 비슷하기에 미처 의문을 갖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는 분명 수십 년을 질병과 싸우고 공부하며 매일 매 순간 질병을 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생각은 '점점 더 모르고, 점점 더 알아야만 하는 것'이 '질병'이라는 '우리의 슈퍼갑'이다.

질병은 우리에게 매번 다른 코스로 생각하고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대해 주기 바라는 이기적인 대상이다. 우리가 매번 "왜"라는 질문을 잊게 되면 질병은 토라지듯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난 모른다. 그래서 질병에게 묻는다"는 진실한 탐구의 자세가 아닐까.

우리가 질병을 대함에 있어 끈임 없이 가졌던 질문이 현재의 의학을 만들었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질병은 우리가 모두 알고 접근하거나 치료하기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변수를 가진 대단한 '갑'이라는 것이다.

환자들 중 혹자는 "의사가 그것도 몰라?"라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질병은 의사와 환자가 같이 동행하며 대해야 할 변화무쌍한 변수이다. 질병과 진료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잊게 되면 우리는 어느 새 질병이 아닌, '내가 아는 병'을 치료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끊임 없이 질문하는 의사라면 당신은 질병을 다루는 제대로 된 조련사를 만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