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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선장'…'책임감'은 제일 덕목

의사는 '선장'…'책임감'은 제일 덕목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5.03.3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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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인하의대 교수, <로드 짐>에 투영된 의사 역할 인식 조사

 
영국의 작가 조셉 콘래드가 1900년 발표한 <로드 짐>을 보면 배의 침몰을 앞두고 탈출했던 젊은 항해사 짐의 죄의식을 근간으로 한 심리적인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다.

짐은 배가 충돌할 때 승객들을 버리고 바다에 뛰어들었으나, 배는 침몰을 면한다. 재판을 통해 단죄받는 짐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레이반도의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그들과 동화되고 번영을 가져다주면서 영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그는 끝내 마음속에 도사린 죄의식과 책임감·치욕감을 버리지 못하고, 이 때문에 결국 백인 악당에게 속아 죽음을 맞는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죄의식에 대한 심각성을 노정하며 고도의 상징성을 활용한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1년을 맞는다. 의대생들은 이 소설 속 '짐'과 세월호 선장, 그리고 학생들을 인솔해갔다가 구조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교감을 어떻게 바라볼까. 의료현장에서 선장으로서의 의사 역할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이승재·김성연 인하의전원생/김애양 은혜산부인과원장)가 <문학과 의학> 9집 기고문을 통해 '의대생들의 조셉 콘래드 <로드 짐> 독후감에 나타난 의사의 역할'을 발표했다.

이번 기고문은 인하의전원 3년생 49명을 대상으로 소설과 영화 <로드 짐>을 본 후 감상문과 토의를 통해 정리됐다.

먼저 '목숨(survival)과 명예(honor),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49명의 학생들 중에 24명(49.0%)이 명예를 선택했으며, 18명(36.7%)의 학생이 목숨을 선택했다. 명예를 택한 이유로는 '선원으로서의 명예' (14명·28.6%)·'선원으로서의 책임감'(10명·20.4%)을 꼽았으며, 목숨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희생'(12명·24.5%) '생사의 갈림길에서 명예로운 죽음이란 없다'(6명·12.2%)는 의견이 있었다.

목숨을 위협받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명예를 택한 학생의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29세 이상의 학생이 28세 이하의 학생보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나이가 많을수록 병역의 의무를 마친 학생의 비율이 높아서 명예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예에 대한 성별에 따른 비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고, 미혼 학생이 기혼 학생보다 높았다.

'짐과 선장이 같은 유형의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49명의 학생 중에 21명(42.9%)이 '같은 유형의 사람이다'라고 답했다. 같은 유형이라는 이유로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는 점'(12명·54.5%)과 '자신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5명·22.7%)을 꼽았다. '다른 유형의 사람'이라는 응답은 16명(32.7%)이었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짐은 자신의 잘못을 속죄했는 데 반해 선장의 경우 그러지 않았다'(12명·70.6%)는 의견이 많았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인 선장으로서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작품 초반에서 보인 짐의 탈출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짐과 교감은 같은 유형의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에 49명의 학생 중에 '두 인물이 같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26명(53.1%)이었고, 다르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12명(24.5%)이었다. 같은 유형의 사람이라고 한 응답 중 '짐과 교감 모두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다는 점'(72.4%)과 '속죄를 위한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다는 점'(20.7%)을 들었다.

'짐과 교감은 같은 유형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응답은 '속죄를 위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짐과 달리 교감은 죄책감을 회피하기 위한 죽음'(84.6%)과 '교감은 선원이 아니므로 책임이 없다는 점'(5.4%)을 이유로 꼽았다.

학생들은 대부분 교감과 짐의 죽음을 비교했다. 학생들은 짐과 교감을 책임감 강한 인물들이라고 판단했다. 두 인물 모두 마지막에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들의 죽음을 헛된 죽음이 아니라 높은 책임감에서 비롯된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의료인 중에서 의사의 역할은 선박의 경우에 어디에 해당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선장(36명·73.5%)과 항해사(6명·12.2%)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지도력·책임감·의사소통을 들었다. 세월호 사건을 접하면서 학생들은 선박에서 선장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의료계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로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의사'(46.0%)·'높은 도덕성을 지닌 의사'(17.5%)·'따뜻한 마음으로 환자와 소통하는 의사'(11.1%)·'정직한 의사'(9.5%)·'자신에게 떳떳한 의사'(7.9%)·'사회에 공헌하는 의사'(4.8%) 등을 선택했다.

황건 교수는 "세월호 사건과 <로드 짐>을 통해 학생들은 책임감에 주목했고 '좋은 의사'의 덕목중 책임감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며 "이런 태도가 '미래의 의사로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답변에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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