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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새벽 분만
청진기 새벽 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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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3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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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 교수(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 최규연 교수(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새벽 1시 40분, 핸드폰 소리에 선잠이 깬다.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한다.

문자메세지를 확인하니 산모가 입원했다는 전공의의 문자 내용이다. 초산모 40주, 3~5분마다 중등도의 자궁수축이 있으며, 양수는 파막되지 않은 상태, 자궁경부개대가 6cm, 소실도 80%, 태아머리 하강이 -1 정도라는 정보를 보낸 것이다. 읽으면서 잠결에도 머리를 굴린다.

경험대로라면 몇 시간 후면 분만이 되겠지, 그러니까 얼마동안은 더 잘 수 있을 거야, 아니면 좀 빨리 나가줘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결국은 분만실로 전화를 한다.

이것저것 산모 상태 물어보고, 내진 상태 물어보니까 금방 분만 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울린다.

"교수님, 곧 분만 될 것 같습니다. 산모가 힘을 잘 주어서요!"

이런 상황이 제일 난감하다. 진행이 예상보다 빨리 됐다고 하는데 당직 전공의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무조건 빨리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너무 급하면 분만하라고 이야기 하고 정말 사고 안 날 정도로 급하게 차를 몬다. 새벽이라 평소보다 훨씬 짧은 시간내에 분만실에 도착, 들어가 보니 태어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린다. 흔히 하는 말로 "Game over!!"

수중 분만에 성공한 산모와 남편의 활짝 웃고 있는 얼굴, 우렁차게 우는 아기와 어쩔줄 모르고 있는 전공의 선생님들이 한눈에 보인다. 이럴 때에는 나도 환하게 웃으면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할 밖에 없다.

그러면서 얼른 소독가운과 장갑을 끼고 회음부 상태를 점검하고 태반을 제거하고 필요하면 봉합을 해준다. 물론 산모와 남편에게 산모가 참 잘했나보다, 진행이 이렇게 잘 되다니 참 다행이다라는 인사말은 필수다. 간혹 섭섭해 하는 산모도 있지만 대부분의 산모는 이런 경우 담당 주치의가 분만을 직접 받지 못한 상황을 이해한다. 물론 이런 경우가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전공의들의 내진 소견과는 달리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진행이 급속하게 이뤄지는 경우 달리는 차 안에서 전공의 선생님의 어쩔줄 몰라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아기울음 소리를 듣게 된다. 아니면 도착했는데 너무 일찍 와서 분만실 옆 쪽방에서 몇시간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아무리 노련한 산과 의사라도 100% 맞출 수는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이가 빨리 세상을 보고 싶어하는 자연의 섭리를 우리가 어떻게 항상 예측할 수 있겠는가?

분만 현장에선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늦은 밤이나 새벽의 분만이고 이 시간대는 교수 호출 시간을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전공의 선생들의 최대 난제가 된다. 이 시간대가 가장 오차가 큰 이유는 모두 다 자는 시간에 산모는 산모대로 힘주고, 산과의사들은 자야할 시간에 깨서 일하다 보니 때로는 진행상황에 대한 판단이 둔해질 때가 종종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산과의사들의, 특히 수련중인 전공의 선생들에게는 분만시간에 늦지 않게 교수들이 오게 하기는 정말 가장 힘든 미션중의 미션이 아닐까! 4년 동안의 수련기간 동안 단련된 분만시간 맞추기야 말로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하는데 있어 가장 든든한 밑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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