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환자는 환자일 뿐
청진기 환자는 환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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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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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권 변호사(분당서울대병원 의료법무 전담 교수·법무법인 LK파트너스 변호사)
▲ 이경권 변호사(분당서울대병원 의료법무 전담 교수·법무법인 LK파트너스 변호사)

명동이나 신사동 거리를 걷다보면 의료용 마스크를 한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봄철 황사가 심해서 그렇다고 지나치다가도 가끔 어딘가 이질감을 느껴 얼굴을 보게 되면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인 경우가 많다.

유명 한류 스타사진을 가지고 와서 이대로 고쳐달라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게 됐다.

몇 년 전부터 외국인들이 국내 대형병원이나 강남의 성형외과를 찾는 일이 생겨나더니 이제는 아예 의료분야를 관광과 결부시켜 내놓은 여행상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초기에는 일본인들이 주를 이뤘다면 현재는 중국인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 몽골은 물론 중동 사람들까지 이 무리에 가세하고 있으니 가히 '의료관광' 또는 '국제의료' 전성시대라 부를 만하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여행가이드들이나 소위 해당 국가에 인맥이 있는 '브로커들'이다.

원래 환자유치는 현행 의료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즉 의료법 제27조 제3항에서는 누구든지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환자를 소개하거나 알선하는 행위는 의료법상 금지돼 있는데 이에 대한 예외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경우다. 즉 위 조항 제2호에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는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의료법 제27조의2에서는 유치업체들에 대한 등록제를 규정하고 있다.

등록된 유치업체들이 대형병원들과의 관계에서 외국인 환자 유치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불법적으로 환자를 유치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국가에 대한 자신의 정보망이나 인맥을 활용해 환자들을 국내로 데리고 온다.

이들이 데려오는 환자들은 주로 고가의 성형수술이나 피부미용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정 의료기관과 전속계약을 하거나 환자가 생길 때마다 강남의 의료기관들과 접촉해 수수료를 가장 많이 주는 의료기관에 환자를 소개한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의 당사자가 의료기관-환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의료기관이 환자와 진료계약을 통해 특정 수술이나 시술에 대해 일정금원을 받고 그 중 일부를 유치업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유치업자가 환자로부터 돈을 받은 후 그 중 일부만을 의료기관에게 의료비로 지불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이런 방식이 일부 극소수의 의료기관에서만 벌어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애초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에 소개·알선하는 행위는 의료의 공적 성격을 고려한 점도 있는데, 외국인 환자의 경우에는 이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단지 유치업체의 등록제도만을 가지고 혼란스런 시장을 제대로 규제할 수 있을까? 환자가 내국인이면 소개·알선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외국인인 경우에는 사실상 전면적으로 풀어주는 방식이 적절한 것인가? 외국인을 상대로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행위를 이용해 마음껏 돈을 벌어도 되지만,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국민을 상대로는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입법태도인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의료기관도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무제한적인 환자유치 행위는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치업자들이 난립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좀 더 강화된 규제책을 내놔야 한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은 인종이나 성별, 나이는 물론 국적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없다. 의료기관마다, 유치업자들마다 다른 의료비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격이 낮아질 수도 있다.

단기간의 수익에 연연하다가 국가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국가브랜드가 약화된다면 향후 누가 우리나라의 의료진·의료시스템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기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유치업자 등록제는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진료비용의 경우에도 상한선을 정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또 의료분쟁조정제도만이 아닌 외국인 환자에게 발생한 의료사고를 국가가 보장하거나 보험제도를 만드는 것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신뢰는 쌓기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지금의 중동 훈풍과 같은 것들은 한 두 번의 비합리적인 의료분쟁 해결이나 유치업자들의 횡포에 의해서도 무너질 수 있는 아직은 약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외국인이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이 더 먼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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