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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1:36 (금)
"풍요로운 삶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풍요로운 삶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5.03.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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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경희-국제의료협력회' 박종학 회장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1993년 경희의대 동문 9명이 마음을 모아 시작한 일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갖은 어려움속에서도 그들의 길이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게 곁이 돼 준 동문들이 있어서다. 마음 속에서는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역 땅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3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은 네팔 등 개발도상국에 병원을 건립해 기부하는 등 해외의료봉사 활동의 지경을 넓혀오고 있는 사단법인 경희-국제의료협력회에게 돌아갔다. 한 마리의 물고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지역친화적인 의료봉사와 지원을 통해 외연과 내실을 다지고 있는 경희-경희-국제의료협력회.

이 모임의 창립 때부터 활동하며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학 원장(서울 은평·박종학정신건강의학과의원)은 "봉사는 할수록 더 하고 싶은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경희-국제의료협력회는 한 동문의 제안이 단초가 됐다. 창립 당시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파견하는 네팔 봉사의사로 나가 있던 김선욱 동문(경희의대 15회·창원산업보건센터)이 동문회에서 현지 상황을 설명하면서부터다.

"한 사람 당 100만원씩 10명만 동참하면 병원을 세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뜻을 모은 동문 9명이 100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각자의 마음에는 1950~1960년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됐고, 우리 역시 의사로서 일편이나마 그 일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에서 십시일반 뜻을 보탠것 같습니다."

▲ 자신의 진료실에서 환하게 웃는 박종학 회장.
1993년 창립한 경희-국제의료협력회는 1995년 4월 외무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사단법인 '경희-국제의료협력회'로 발족하고, 그 해 7월 한국국제협력단에 NGO로 등록했다. 공식적인 법정기구 출범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체계적인 운영과 다각적인 봉사활동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단체는 이사와 회원이 출연하는 기금으로 전액 운영되는데도 KOICA에 등록돼 있다보니 예산·사업보고를 해야합니다. 번거로울 수 있지만 책임의식을 갖게 됩니다. 저희의 활동을 점검하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줍니다."

경희-네팔친선병원의 문을 열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국내 상황은 IMF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회원도 많지 않던 때라 조심스럽게 지원 중단을 검토하기도 했다.

"병원을 세우고 매달 1000달러씩을 운영자금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다 IMF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지원금 조달이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후원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이사 몇 명이 직접 현지를 찾았습니다. 웬만하면 현지의 적정한 기관을 찾아 병원 운영을 맡기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 우리를 찾아오는 환자를 만나면서 마음을 돌이켜야 했습니다. 생전 처음 의사를 만나는 이들도 있었고 진료를 받기 위해 며칠을 걸려 오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눈빛 앞에서 도저히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경희-국제의료협력회는 병원 건립 10년만인 2003년 네팔 티미시에 병원을 기증했다. 그동안 진료한 환자는 연인원 9만명에 이른다. 티미시는 시 예산을 보태 80병상 규모의 '한국-네팔친선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젠 어엿한 시립 종합병원으로서 교육과 진료를 병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던 대로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입니다. 병원을 세울 때 우리에겐 꿈이 있었습니다. 한 의료선교사가 세운 작은 의원이 오늘날의 세브란스병원이 된 것처럼 우리가 세운 병원이 네팔에서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서원했습니다. '한국-네팔친선병원'은 앞으로 더욱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시선은 또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해마다 1월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아 떠난다.

 
올해는 지난 1월 17~22일 필리핀 푸손섬 바타안지역 아에타 마을을 다녀왔다.

"네팔 활동을 마무리 한 후 태국 치앙라이·미얀마 양곤·동티모르 딜리 등지에서 의료봉사가 이뤄졌고, 최근 3년간은 키르기스스탄을 찾았습니다. 올해는 필리핀을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주안점을 두는 곳은 네팔 처럼 병원을 세우고 지원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직 현지의 제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결정이 여의치 않지만 키르기스스탄·필리핀 등에서는 병원 건립 요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회원 수가 120명에 이른다. 의사·치과의사·약사·간호사·일반회원 등이 각자에게 주어진 곳에서 맡겨진 궂은 일을 소리없이 이뤄낸다. 모두의 마음이 모아져 이어 온 22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각별한 손길이 느껴진다.

"저희는 동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저변에 자리한 유대감·연대의식도 일정 부분 작용하겠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끊이지 않은 회원들의 헌신과 열정이 우리 모임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지만 몇 분은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저희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초창기부터 도움을 주신 김병연 고문(전 코리아헤럴드 사장), 초대 협의회장을 맡으셔서 성장을 이끌어 주신 정인화 원장(성남·정병원),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총무로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오신 송지영 경희의대 교수(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또 현재 총무를 맡으신 이순진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정다운 경희대병원 전공의, 박수현 삼성서울병원 전공의 등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봉사는 항상 감사의 연속이다. 환자들도 감사해 하고 의사들도 감사해 한다.

 
"네팔 병원에 방사선장비와 앰뷸런스를 지원하기 위해 개최한 두 번의 자선음악회에는 3000명이 찾았습니다. 그들의 정성은 고스란히 더 깊은 사랑을 담고 다른 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봉사에 나선 이들에게도 감사가 이어집니다. 말은 잘 안통해도 낯선 환자들에게서 전해 오는 감사는 감동적입니다. 우리가 더 감사한 이유입니다. 봉사는 소통이기도 합니다. 봉사자들간의 소통·환자와의 소통·낯선 세상과의 소통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경희-국제의료협력회는 지진·홍수·태풍 등 지구촌에 잇따르고 있는 대형 재난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 나갈 예정이다.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라도 찾아갈 수 있도록….

"국경·이념·종교·인종을 넘어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겠습니다. 재난상황에 맞는 체계적인 응급의료시스템도 갖추길 바랍니다. 그 자리에 젊은 회원들이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봉사를 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되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박 회장이 말하는 풍요로움은 어떤 것일까. 베풀고, 나누며, 희생하면서 마주한 풍요로움이다. 질병의 질곡에 짓눌린 이들을 통해 전해진 풍요로움이다. 사랑으로 아픈 상처를 감싸주며 다가온 풍요로움이다. 이 보다 더 값진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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