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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향한 변화 '위기의식'에서 비롯
'신뢰' 향한 변화 '위기의식'에서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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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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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사의 윤리의식은 어떻게 형성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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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향한 변화 '위기의식'에서 비롯

▲ 이 일 학(연세의대 교수)

의사들은 사회가 더이상 의사를 존중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언론은 소수의 비행을 전체의 문제로 무책임하게 확대해서 보도하고, 환자는 의사를 의심스러워 하면서도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한다. 그런 요구가 부당하다는 말을 하면 돌아오는 것은(심지어 신체적) 위협이다.

협력관계에 있어야 할 국가 기관은 관료주의적인 소위 '갑'과 '을' 문화를 경험하게 해 준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문제만큼 심각한 위협은 의학이 환자를 '돌보는' 일이 살아남는 경영의 문제로 전락했다는 자괴감이다.

의사들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정적인 수준이 아니라 의사란 무엇인가하는 정체성의 문제를 겪고 있는 셈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어려운 환경의 문제보다 근본적이다. 부당한 관행을 개혁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히 임하게 하는 것을 처음부터 막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정체성을 먼저 설정해 놓고 의사를 거기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하고 있는 그리고 의사에게 사회가 기대하고 있는 행위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의사의 정체성이란 의사가 현재 하고 있는 의료행위와 분리해 이해할 수 없다.

자율성 등 사회적 대우 누리려면

그리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집단 차원의 과업은 의사란 나면서부터 결정된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이고, 교육과 규율 역시 이 기능이라는 차원에서 기획되고 실천돼야 한다.

현실에서 행해지는 의료행위나 사회적 기대를 어디에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사변적인, 그저 흥미거리가 아니라 의사의 정체성, 결과적으로는 현재 의사가 경험하는 위기의식을 극복하는기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일수도 있겠다.

전문직은 사회의 인정을 통해 독점권·자율성·일정 수준의 보상과 같은 사회적 대우를 누린다.
이런 대우는 오늘날 자유화된 시장경제체제 내에서는 상당한 지원이고, 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역시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신뢰가 필요하다.

영국의 철학자 오노라 오닐은 이 신뢰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할 것을 강조한다(A Question of Trust). 즉 어떤 전문직종에 대한 신뢰란 전문직의 기능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기예보가 맞는 정도만큼만 예보를 신뢰할 수 있는 것처럼 의학 역시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수준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만 믿을만하다고 의료전문가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뢰는 전문직 종사자에 대한 호감이나 존경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 오닐의 주장이다.

의사가 먼저 사회적 역할 제안

의사가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수준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기술·태도를 의사들은 사회에 보여줘 사회적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의사 중에는 맥빠지는 것처럼 느끼는 이들도 있겠으나 증명할 수 없고 때로는 지나친 요구일 수 있는 이타주의, 학문적 엄격성과 같은 덕목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지식·기술·태도는 도덕적 덕목보다는 훨씬 구체적이다(여전히 분명하게 보이지 않겠지만).

지식과 기술·태도라는 영역에서 사회적 기대를 알아내는 일은 여전히 고약한 일이다. 사회적 기대를 알아내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누가 사회를 대표하는가?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낼 것인가? 민의를 대표하는 집단을 구성해서 합의하면 될까? 그래서 사회의 신뢰와 같은 말은 실천할 수 없는, 그저 정치적·윤리적인 수사에 머무르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의사와 사회가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의사에게 제공될 사회적 자산과 의사가 사회에 제공할 전문성을 상의하고 있다고.

이런 계약과정은 제안하는 사람과 그 제안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의사가 먼저 조건을 제시하면 어떨까? 그게 어려울까? 전문가로 번역되는 'professional'이 선언하다는 의미를 지닌 'profess'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사)가 어떻게 의료를 통해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선언으로 끝나선 곤란하다. 계약-협상은 조건의 제안과 협상, 선의와 쌍방의 이익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 일러스트 =윤세호 기자

의사가 먼저 선언하는 일은 사회적 기대를 끌어내는 일이다. 이전에는 아프기 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사회적 기대가 구체화 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경제적 요인, 사회적 안정 외에는 별 관심없는 정치가와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우호적일 수 있는 그래서 의사들에게도 만족스러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신뢰 얻으려는 노력 부족

한국에서 의료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두고 의사와 사회가 머리를 마주대하고 앉은 적이 있었나?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의사가 집단적으로 이런 종류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키 적은 없었다.

식민정책의 일부로 시작돼 이어진 독재정권과 그 후의 정치 상황 속에서 정치적인 차원에서만 유지됐던 의사관련 정책 때문에(그뿐만은 아니겠으나) 의사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협상을 통해 획득해야 할 것임을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보건의료영역에서 의사들은 의미있는 변화들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의사 전체가 이뤄냈다기 보다는 개별적인 변화였다고 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의약분업 파동·의료민영화 문제 등 몇 가지 사건을 제외하면 의사들은 항상 개별적으로만 행동했다(이런 개별적인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사 집단의 활동은 개별의사들의 활동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선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에서도 사회적 요구를 파악하고 대화하려는 노력보다는 '(현재 임상진료에 임하는) 의사들의 관점'을 제시하고 관철시키려 했을 뿐 더 근본적으로 협상과정을 유지시킬 '신뢰'를 얻어내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신뢰는 윤리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의사가 사회적으로 요구받은 기능 수행과 관련된 것이다.

의사윤리강령이나 중앙윤리위원회로 대변할 수 있을 윤리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진료에 필요한 업데이트된 지식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술기 그리고 사회적 책무와 환자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가 종합된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테이블에 나서지 않았기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없었다.

위기는 기회다

미국의사협회의 등장과 발전을 연구한 폴 스타의 연구(미국 의료의 사회사)를 보면 의사협회(AMA)의 등장과 발전, 의사윤리강령의 제정, 의학교육 정상화와 같은 긍정적인 변화는 의사들의 위기의식에서 비롯했다.

의학의 본질과 의사의 정체성에 대한 염려와 숙고가 의사들을 자발적으로 변화하도록 밀어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 의사가 경험하고 있는 위기는 의사들에게 기회일 수 있다.
필요한 일은? 개별의사가 아니라 의사 전체가, 정부가 아니라 사회 일반과 협상테이블에 앉는 일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협상이지 통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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