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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업성' 취약 사회적 신뢰·지지 저해
'전문직업성' 취약 사회적 신뢰·지지 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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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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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에서 윤리는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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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업성' 취약 사회적 신뢰·지지 저해

▲ 안 덕 선(고려의대 교수)

현대적 개념의 전문직으로서 의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엽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현대적 개념의 과학을 도입함으로써 약료업자·이발사외과의사 그리고 의사로 분리돼 있던 영역이 전문직 의사로 통합돼 발전하게 됐고 의사에게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한 현대적 개념의 면허제도가 도입돼 의사는 의업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를 넘어 지역사회의 소자본가로서 개인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의료가 의사와 환자의 직접적인 진료관계에서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로 변모하는 사회적 실천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의사는 강력한 수가 통제를 통한 보험제도 하에서 소자본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경제적 자율권은 이미 상실했다. 더구나 의료가 상업화·산업화 그리고 정치화되면서 의사가 아닌 제3자가 의료를 통해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로 인해 의료 환경은 윤리적으로 매우 혼돈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인류 역사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의료윤리는 '환자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환자를 위한다는 좋은 의도가 반대로 환자를 위태롭게 하거나 다른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또 질병으로 인해 심신이 미약해진 환자를 이용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나쁜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환자에게 해악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전통적 의료윤리 명제는 여전히 유효성을 갖고 있음에도 '바르게 살라'와 같이 이름뿐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적절한 도덕적 균형감각 필요

전업 의사는 환자의 이득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의료윤리적 명령과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추구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라는 두 가지 경쟁적인 가치 속에서 적절한 도덕적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의료가 상업화되고 산업화되면서 거대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는 상황에 놓임으로써 인간과 달리 본질적으로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없는 기업과 법인 등이 영리추구의 주체가 돼 의료 환경에 개입함에 따라 자본 참여자의 이득 추구가 환자의 이득은 물론 의사의 생존을 넘어서는 윤리적으로 매우 염려스러운 세상이 됐다.

현대 의학의 여명기였던 19세기 말,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브레들리는 윤리에 대한 요구와 적용은 사회적 지위와 책임에 따라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의사와 같이 중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전문직은 더욱 강화된 윤리적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첫째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의사는 사회적·경제적 강자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더해 면허를 통해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갖게 되기 때문이고, 둘째 그로 인해 의사 그리고 변호사와 같은 대표적인 전문직과 상대적 약자인 환자와 의뢰인 사이의 권력과 지식의 비대칭성의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자의 약자에 대한 비윤리적 행위로 초래되는 위해를 방지하고 공공을 보호하기 위해 전문직의 윤리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추론이다.

결국 의사와 의료에 대한 윤리적 심사와 판단을 담당할 중간단체를 구성해야 할 필요성은 별도의 독립적인 의사 단체를 형성하게 됐다.

영국의학협회(General Medical Council)는 그러한 단체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의사단체가 기능과 직능에 따라 의사의 권익을 위한 임의단체(의사회:Medical Association)와 의학교육과 의료의 윤리성을 위한 공공법정단체(Statutory body)인 의학협회(Medical Council)로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의 신분과 권익을 주로 담당하는 의사조합인 영국의사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와는 달리 영국의학협회는 환자와 사회의 보호를 위한 현대적인 'Medical Regulatory Authority'로 발전했다.

말하자면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부실한 의학교육 그리고 의료윤리를 위반한 회원이나 대학에 대한 계도와 징계를 담당하는 주체가 구분돼 발전하게 됐다.

의사에게 있어 선행의 의도로 대표되는 윤리적 덕목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사는 동시에 의료의 절차와 선행의 의도를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 일러스트 윤세호 기자

다시 말해 전문직이 합의한 의료 기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윤리를 제시하고, 만일 윤리적인 문제를 초래했을 경우 그것을 규제할 수 있는 실제적인 직무윤리가 필요한 것이다.

영국의학협회는 영국의 의과대학과 의사가 준수해야 할 교육과 의료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의사나 의과대학이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의과대학 또는 의사 개인을 제재할 수 있다.

2013년 영국에서 고령과 의료기준 미달, 윤리적 사안의 위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면허가 취소된 의사가 60명이 넘고 있다. 이같은 영국 의사 집단 내의 엄격한 자율규제는 의사가 높은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구체적·상황적 윤리 제시해야

의료의 윤리성을 판단하거나 의사의 품의를 평가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기준은 현실적 상황에 따라 행동 강령 또는 윤리 강령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 언어로 '강령'·'지침'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나 적절한 규제가 따르지 않는 강령은 상징적으로 남거나 자연 폐기되고 만다. 간혹 강령이 아닌 의료법적 근거를 우선시 하는 사고도 존재한다.

그러나 법은 한 번 제정하면 조항을 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법으로 의료에 대한 구체적 상황을 세밀하게 기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 선의의 피해자도 만들 수 있다.

전문가 집단 내의 합의된 의료 기준에 대한 정당하고 엄격한 근거에 대한 판단은 비록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윤리적인 부당성을 지적할 수 있고 이를 계도하고 시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전문직의 합의로 자율적으로 만든 강령은 시대적 변화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 위배를 미리 예방하는 기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강령 위배사항에 대한 엄격한 조치와 처벌이 뒤따를 때 가능하다는 단서가 있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윤리강령 위반에 대한 적절한 규제나 조치가 미흡했던 사실은 법정단체인 의협의 회원 보호가 의사 개인의 과오에 대한 변론적 보호인지, 아니면 의사개인의 과오로 인한 나머지 회원의 명예와 신뢰에 대한 실추를 방지하는 것인지도 매우 혼돈스러운 경우가 있다.

직무윤리·자율규제 중요 덕목

우리는 의료기술의 선진화는 달성했으나 의사의 전문직업성 발달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전문직업성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직무윤리와 자율규제이다.

전문직업성이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지지를 약하게 하고, 의사 전문직의 번영과 발전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의료수가가 낮은 것이 의료윤리의 훼손을 갖고 온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사나 의료기관의 생존이 의료윤리에 우선하거나 의료윤리는 수가와 연동적인 작동을 해야 한다는 조건부 윤리이기 때문에 의사 전문직의 추락을 부추기는 매우 위험스러운 사고로 보인다.

1930년대 의사의 경제적 자율권이 양호했던 시절,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의사는 더도 아닌 덜도 아닌 장사치'라고 비판했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은 의사들이 의료윤리, 특히 기준이나 강령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 직무윤리를 발달시키고 의료규제에 대한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는 한 아직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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