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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의학권력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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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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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 교수(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 최규연 교수(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일부 학자들은 기술 개발의 역사로부터 추측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 예측의 한계가 2045년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기 때문이란다.

'UN미래보고서 2045년'에 미래에 사라질 직종이 나열돼 있으며, 여기엔 의사도 포함돼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등장, AI 로봇기술의 출현으로 더 이상 의사는 '고용'의 대상이 아닌 더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로봇 '구입'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해 3000명씩 나오는 새내기 의사들이 20~30년 후 한창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 의사들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한다니 화들짝 놀랄 일이다. 정말 보고서의 미래예측 대로라면, 당장 이들에게 지금이라도 직업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우리세대에는 과학과 기술이 의학의 일부가 아닌 모든 것이 돼 버려 의사가 하는 일의 전부를 표상할 만큼 힘을 갖고 있다.

이전의 의학은 임상의사의 오래된 연륜과 환자의 고통을 헤아리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고, 임상의사 개개인이 각 의학 분야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의학에서 과학과 기술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임상적 전문성을 근거로 확보된 임상의학의 지위와 권위가 과학적 의학에 의해 점점 도전받게 됐다.

의학 분야의 막강한 권력이 개개인의 임상의사 위치에서 과학적 연구와 전문 학회에 매진하는 규모가 큰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옮겨가게 돼버린 것이다.

각 나라마다 상이한 의료체계와 보건의료제도로 인해 일반대중들의 의료접근방법 또한 매우 다르지만, 공통점은 인터넷과 각종 매체를 통해 보통 사람들도 쉽게 의학 지식에 대한 정보 공유가 가능해진 점이다.

이 덕분에 누구나 존경받고 권위 있는 의과학자들에게 자신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하는 일이 당연시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특히 다른 나라들보다 의료접근 방법의 쏠림 현상이 심하지 않나 싶다. 1차, 2차, 3차로 그 목적에 따라 나누어진 의료체계가 왜곡되고 수많은 정보의 홍수로 인해 특별한 지식과 지위에서 비롯된 의사의 권위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빠르게 변해 버렸다.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임상 의사들은 1차 진료를 통해 환자들의 고통을 좀 더 인간적인 면에서 이해하고 접근해 왔다.

그러나 지난 세대 동안 보통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의학 지식이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지식이 돼 버렸고, 그런 정보에 대한 일반인들의 욕구 역시 과하게 증가해버린 현대에는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임상의사의 범위를 넘어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는 대형병원의 의과학자에게로만 권위를 주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서 분명 근본적인 면을 놓치고 있지 않나 우려가 된다. 과학적 의학은 의료행위의 실천에 있어서 사람이 아닌 지식을 강조하는 면이 더욱 중요하게 고려된다는 점이다. 의사들의 보수성은 그들이 행하는 의료행위의 불확실성과 어마어마한 책임감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생과 사를 가르는 분초의 시간 앞에서 어떤 것이 최선인지 확신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떤 의사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의사들은 대안적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점차 근거가 확립된 진단과 치료법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현상은 일반대중에게까지 영향을 줌으로써, 의학계 뿐 아니라 대중들도 점차 과학과 첨단 기술이 앞선 의과학자들에게 권력을 주고 신뢰를 보내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개개인의 환자가 가지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고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여러 요인들이 환자의 고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몰입할 수 있는 임상 의사들의 노고가 과소평가 되고 있지 않나 자문하게 된다.

엄청난 의학의 발전으로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어 하는 욕구와 인공지능의 출현이 멀지 않은 현대에 과학과 의학이 당연히 분리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둘이 같다고 맹신하면서 생겨나는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이전부터 믿어온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을 대형병원에서의 권위 있는 과학자로서의 의사로만 여기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객'이 아닌 '환자'로서 그들의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고통에 영향을 주는 개개인의 가족사, 성격 등 모든 백그라운드를 어루만지고 공감하는 이상적인 의사에 대한 믿음과 권위가 소멸되어 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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