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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 미래 '전달체계 확립'에 달렸다
한국 의료 미래 '전달체계 확립'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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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2.0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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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이 살아야 대한민국 의료가 산다"
|신년논단| ④ <끝> 의료이용, 비정상의 정상화는 요원한가?
▲ 임금자(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회계학 박사) ⓒ 의협신문 이정환

세계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를 부러워한다?
'미국에 여행은 가도 살기위해 가지는 않는다. 미국에는 독일 같은 의료보험제도가 없어 사는 것은 독일에서 산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훌륭한 제도다.'

첫 번째 것은 필자가 독일 유학시절에 많은 독일인들로부터 들었던 말이고, 두 번째 것은 귀국해서 우리나라 전 보건복지부 장관들과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들이 한 말들이다.

둘은 같은 말인 듯하면서 다른 말이다. 같은 것은 독일이나 우리나라가 자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좋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독일은 국민이 좋다고 하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정부나 보험자가 좋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건행정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지적하면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 왜 그럴까?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의료시스템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법률적으로는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공적의료보장시스템을 운영하는 모든 나라들이 그러하듯, 우리나라도 법률에 단계적 의료이용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단계적 의료이용이란 의료의 지속성 확보와 적정진료 보장이라는 목적 외에도 지역간 의료기관의 종별배치와 균형발전 및 활용을 통한 의료공급 효율의 향상과 의료비 절감, 의료재정의 안정 등을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써 의료전달체계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딱 거기까지이다. 규정은 있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착돼 있는 단계적 의료이용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법률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규정에 맞게 단계적으로 의료를 이용해도 증가하는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데 이를 지키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환자선택권 보호'라는 명분이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졌고, 그 결과 고비용-저효율의 의료시스템이 돼버렸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전달체계가 유명무실화된 것은 1989년에 의료체계를 단계적으로 이용하도록 도입된 진료권 개념이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규제정책이라는 이유로 폐지된 것이 계기가 됐다. '진료의뢰서'제도는 형식적인 제도로 변질됐고, 1차 의료기관은 진료의뢰서 발급 창구로 전락했다.

환자 진료 후 필요에 의해 진료의뢰서가 발급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요구에 의해 발급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의료기관의 규모나 역할과 관계없이 경쟁적으로 외래환자를 유치하는 환경도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린 요인이다.

시설과 인력, 자본이 의원에 비해 훨씬 우월적인 대형대학병원이 의원과 환자유치경쟁을 한다. 대형병원이 외래환자유치에 더 적극적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유명브랜드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서 대형병원의 외래환자유치 노력이 강화되면서 대형병원·수도권병원으로 환자가 쏠린다.

당연히 의원에서 충분히 진료가 가능한 환자도 대형병원으로 몰린다. 그 결과 병원의 외래 다빈도 상병 5위 이내에 대표적인 의원 진료 질환인 감기나 본태성고혈압·당뇨 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병원의 외래진료비가 급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의 병원 외래진료비 증가폭이 의원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상급종합병원의 외래진료비가 154.8% 증가할 때 의원은 59.8% 증가에 그쳤다. 주로 외래진료를 하는 의원보다 중증질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병원의 외래진료비 증가 폭이 더 크다.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경영난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하는 의원과 중소병원이 늘어났다.

혹자는 대형병원의 외래환자 유치 전략을 두고 일반적인 경영전략이라고 치부한다. 또한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환자의 선택권'의 당연한 결과가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국가이며 의료기관도 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환자(고객)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경쟁력이 있는 곳에 환자가 쏠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긴다.

의료기관도 경쟁력이 있으면 생존하는 것이고 경쟁력이 없으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다른 모든 시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경쟁을 통해 자원은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의료는 이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위의 말이 의료에도 맞는 말이 되려면 의료시장으로의 진출입이 자유롭고 가격이 자유롭게 결정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시장은 그런 시장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서비스시장에의 진출입은 상당히 제한적이며, 가격도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보험수가가 별도로 정해져 강제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된 시장 상황, 왜곡된 경쟁상황에서 자유경쟁과 그를 통한 생존과 퇴출 운운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강제 적용되는 보험수가는 시장가격을 고려하지 않음은 물론 원가의 7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의료기관은 시장가격과 보험수가와의 차이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외래환자를 가능한 많이 유치하고자 한다.

이런 사정이 지속되는 한 대형병원의 외래환자 유치를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며,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예상보다 크게 상승하게 될 것이다.

결국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 위협을 받는다. 의원에서도 충분히 진료가 가능한 환자를 대형병원에서 진료하는 것은 단계적 의료이용이라는 제도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환자의 선택권'도 일반적인 시장에서와 달리 제한돼야 한다. 의료의 지속성 확보, 의료비 절감 및 의료자원의 효율적 이용 등을 위해 도입된 의료전달체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을 단계적으로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이 '환자의 선택권' 제한이다. 현재와 같이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미명아래 의료를 단계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환자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명분 아래 환자가 의료기관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의료전달체계를 허물고, 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돼서는 곤란하다.

 

의료체계의 정상화는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으로부터
환자에게 의료기관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대형병원에서 '가벼운'질환의 외래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비정상적인 의료체계는 의료비의 가파른 증가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은 2000년 4.5%에서 2012년에는 7.6%로 증가했다.

다른 OECD 회원국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사회적·경제적 여건의 변화와 더불어 의료비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료비를 비정상적으로 급증시키는 주요 원인들 중 하나가 바로 무너진 의료전달체계와 이로 인한 의료자원의 비효율적 활용과 낭비이다. 이러한 상태로는 현재의 의료체계조차도 유지하기 어렵다.

의료비를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양질의 의료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은 필수적이다.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단지 법률상의 규정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의료기관의 종별 기능과 역할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즉 의료법의 개정을 통해 의료기관의 각 종별 기능에 대해 구체화하고, 국민건강보험법에 의료전달체계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과 아울러 이를 강제화해야 한다.

휴일이나 야간, 응급상황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자가 의료전달체계를 지키지 않고 곧바로 대형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없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선 현재 유명무실해진 본인부담의 종별 수가차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는 의료전달체계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환자가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이 소폭 증가할 뿐, 의료기관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물론 상급종합병원이 외래환자를 일정 비율 이상 받을 경우 상급병원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 비율이 느슨해 별 실효성이 없다. 아무런 부담도 없는 의료기관은 물론이고, 환자 역시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의료전달체계를 지키고자 하는 유인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종별 수가체계를 재검토하여 각 종별 역할에 맞지 않은 환자를 진료하였을 경우에는 환자와 의료기관이 모두 불이익을 받도록 해야 한다. 우선, 환자에 대해서는 의료전달체계를 벗어나 곧바로 대형병원에서 진료받을 경우 진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도록 한다. 그리고 상급종합병원에 대해서는 범칙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원활하지 못한 진료의뢰와 회송시스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행법에도 진료의뢰제도에 대해 규정하고는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고, 회송제도는 일부 협력병원에서만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진료를 의뢰하고 회송하는 것이 의료기관의 경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진료의뢰와 회송에 대한 수가를 신설하고, 그 비용은 건강보험재정에서 부담하도록 한다. 동시에 건강보험급여비 청구서에 의뢰 및 회송을 기재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의뢰와 회송제도의 조기 정착을 위해 초기에는 의뢰와 회송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환자의 선택에 의해 마음대로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정상적인 의료시스템 유지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의료전달체계를 재정립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의료전달체계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천되기 위해서는 환자와 공급자 모두 의료전달체계를 이탈한 의료이용보다는 의료전달체계에 의한 의료이용이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것이 현재의 환자와 미래의 환자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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