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오해와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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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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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 최규연(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2010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의 산부인과 마루타 발언으로 산부인과 전공의와 학생의 진료 참관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후 의료현장에서 학생의 진료참관이나 실습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환자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료과정의 성희롱 예방기준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산부인과 진료 및 분만 중 전공의 진료를 '참관'으로 표기해 산부인과 전문의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일부 내용을 수정하게 됐다.

필자의 의과대학생·전공의 시절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이었다. 이후 산부인과 전문의로 환자를 본 지 벌써 20여년이 지났고, 그동안 진료실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는 하지만 진료현장에서의 변화는 놀라울 따름이다. 오죽하면 필자가 의과대학시절에는 없던 '의료윤리와 의사환자관계'가 신설됐을까!

환자와 의사관계의 변화와 환자들이 의사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자조섞인 푸념을 하는 동료·선배 의사들을 볼 때가 많다.

되짚어보면 그 시절 의료가부장적인 형태로 진행돼 온 의료행위에서 의사는 소위 갑의 입장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시절의 의료행위 습관에서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 환자들의 인식과 태도에 당혹스러움을 푸념정도로 해소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 때와 지금 진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고민해보니 환자에 대한 나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여의사로서 여성 환자를 보는 산부인과 진료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분명 이로운 점이 많다.

그 당시에는 일단 환자 수가 너무 많아 환자 개개인에 대한 배려와 태도보다는 빠른 시간 내에 정확히 많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 집중하다 보니 환자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학생 실습 시절에도 의사가운을 입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학생 신분으로 환자에게 병력을 물어보거나 진료를 해도 그대로 따라주는 분위기여서 강의를 통해 배웠던 지식을 실제 임상 경험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진료현장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이런 경험이 학생들과 인턴·전공의 과정에서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제한적인 학생·전공의 교육에 당혹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됐다.

산부인과 진료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의료행위의 당사자인 의료진과 환자 말고는 정확히 알 수 없지 않을까?

외래든 응급실이든 분만실이든 일단 여성환자가 내원한 순간부터 산부인과 진료는 매우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이뤄진다. 병력 청취 때는 매우 사적인 환자의 성과 사생활에 관련된 질문이 포함되며, 신체 진찰자체도 가장 꺼려하는 하의 탈의와 내진이라는 특수한 과정이 이뤄진다.

분만의 경우 의료진 앞에서 양다리를 벌리고 시행되는 내진은 산고의 고통과 별개로 또 다른 안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많은 여성환자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면서 하는 말이 있다. "이래서 산부인과 진료는 정말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진료과정의 성희롱예방 실태 조사 결과에서 분만실에서의 의대생 참관이 산모 입장에서 매우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내용이 있다. 

매우 불편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과 안전한 진료와 치료를 위해 필수적인 진료과정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분만이 되기까지 긴 시간동안, 심지어는 24시간 이상을 넘기는 진통과정 중에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산모와 태아의 안전이라는 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진료 행위이다. 특히 자궁경부의 열림 정도와 태아의 하강 정도를 파악하는 내진은 가장 유용한 전문적 진찰과정이며, 이를 소홀히 했을 경우 산모와 태아의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산모에서 진통 및 분만과정 중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의료진이 적절한 시기에 파악하고 빠르게 대처해 건강한 태아의 출산을 돕는 것이 산과 의사의 가장 큰 임무이여 존재이유다. 따라서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안전한 출산을 담당하는 산과 전문의에게 이러한 진찰과정은 산모의 개인적인 불편함에 우선하는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책무다.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고 있는 덕분에, 특히 다른 선진국과 견줘도 손색없는 한국의 의료기술로 인해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률 및 신생아 이환율이 OECD국가의 평균 수준보다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권위원회에서 제시한 실습생이 내진하고 참관하는 부분이 환자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취지의 내용은 이제까지 언급한 기본적인 진료행위에 해당되는 점을 폄하하고 왜곡하는 내용으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의과대학생이 아닌 전공의의 진료행위를 실습생의 진료행위로 오인하고 환자의 의사에 반한 무분별한 의료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지극히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이 아닌가?

의과대학생이 임상실습 현장에서 실제 환자를 진찰하기가 힘들어진 상태가 된지는 오래전이다. 지금은 환자들이 엄청난 정보와 경험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고, 가족 중에 의사 한명쯤은 있는 상황에서 누가 의과대학생인지 누가 인턴인지 전공의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나름대로 있다.

결국 진료현장에서는 환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전문의의 진료만 허락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고, 성공적인 분만과 진통과정 중에 꼭 필요한 내진조차도 거부하는 일도 발생한다.

심지어는 산부인과 전공의의 내진을 거부하고 막무가내로 담당 주치의인 교수의 내진만 허락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생긴다. 환자들이 이런 요구를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의료행위에 대한 권리만 앞세운 환자들의 인식과 의료현장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 이를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진료로 폄하하는 시각이 뿌리깊은 풍조와 오래전부터 있어온 의료인에 대한 불신이 만든 결과물이 아닐까?

산모를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의료현장에서 여성환자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함께 성희롱의 오해 소지가 있는 진료에 대한 신중한 고민은 물론필요하다.

진통중인, 분만을 준비 중인 산모에게 담당교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산모옆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이해시키고, 대학병원으로서의 전공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함을 설명하고 환자에게 진료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더해진다.

필자는 오늘도 진료실에서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신체진찰을 하면서, 진통으로 입원한 산모들의 내진을 하면서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산모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끔 최대한 배려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런 고민을 하면서 환자들도 의료진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며, 정책입안자들 또한 진료현장과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충분한 이해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대로 합의가 이뤄진 결정이어야만 의료진과 환자사이의 인식에 대한 간극을 최소화하고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의료행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의료진은 최선의 진료를 하고, 환자들은 의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때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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