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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의 편지 "한의사·정부관료에 묻고 싶다"

전공의의 편지 "한의사·정부관료에 묻고 싶다"

  • 최원석 기자 cws07@doctorsnews.co.kr
  • 승인 2015.01.2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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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통해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비판
"밤샘 당직 중 답답한 마음에 펜을 든다"

최근 정부의 '규제기요틴' 정책 중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방침으로 의료계가 충격을 입고 있는 가운데, 미래 의료계를 짋어질 한 전공의 편지가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9일 익명의 전공의가 당직을 서며 작성했다는 편지 한통을 소개했다. 편지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분노와 질책의 말들이 담겨 있다.

이 전공의는 "현대의료기기의 사용이 정확한 진단과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사용하지 않았던 지금까지의 진료는 무엇이냐"며 한의사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글을 열었다.

그는 "한의사들이 한의학이라는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진료를 해 왔다고 믿고 싶다"면서도 "하지만 당신들의 발언을 보면 고대진료를 행해오며 국민의 건강권을 잠재적으로 해쳐왔고 안그래도 비어있는 국민의 주머니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밖에 생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또한 "X-ray장비·초음파기기·CT·MRI·내시경을 들여놓고 경험 없는 진료를 하면서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받고 제대로 진단·치료를 못한다면 의료 이용자인 국민들에게는 고통"이라며 "심지어 현대의료기기를 계속 사용해 왔던 의사들조차도 정확한 진단을 위해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당직 중에 글을 적고 있다는 그는 "방금 배가 아픈 환자의 증상·항암치료력을 고려해 추가적인혈액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혈액 검사를 처방했고 이상이 있으면 CT로 추가 검사를 진행할 수도 있겠다는 임상 결정을 내렸다"며 "이같이 현대의료기기는 의사의 복잡한 임상 결정을 바탕으로 사용된다"고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정부관료들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2013년 건강보험급여에서 영상진단 및 방사선치료료, CT, MRI 비용 급여를 합치면 약 3조원에 이른다. 보험인정이 되지 않아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직접 나가는 비용인 초음파를 포함하지 않고도 이 정도"라며 "1만 8000명의 한의사가 추가로 급여를 청구한다면 단순 계산으로 6000억원 이상의 추가 급여가 더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증 질환에 대한 초음파 급여화 예산 3000억원도 보장 못하는 판에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불필요한 급여 지급을 늘리는 것은 국민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끝으로 그는 "학부 시절에 의사로서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서는 나라가 잘못할 때 그것을 지적하고 고치자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은사의 말을 곱씹으며 편지를 마쳤다.

송명제 대전협 회장은 해당 서신에 대해 "많은 전공의가 규제기요틴의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락하는 정책에 분노하고 있다"며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으로 만들어지는 경제 활성화가 국민 건강보다 중요한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고 심정을 토로했다.

앞서 대전협은 지난 2일 '정부는 국민건강권을 단두대에 올려놓고도 의료인들의 침묵을 기대하는가'라는 제하의 성명을 내어 규제완화 추진을 강력히 규탄한 바 있다.

 

<서신 전문>

국민들께, 그리고 의사, 한의사, 정부 관료 분들께

날씨가 춥습니다. 새벽 2시에 불 켜진 빈 당직실은 더욱 춥습니다. 어려운 와중에 짧게나마, 글을 써 보고자 합니다. 최근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여부를 놓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환자를 보느라 하루하루 잠을 설쳐가며, 이한 몸 건사하기 힘든 젊은 의학도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인 것 같아서 답답한 마음으로 펜을 들어봅니다.

한의사 선생님들은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정확한 진단과 한의학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며 무조건 이루어야 될 일이라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의사, 아니, 양의사의 이기주의의 희생양은 자신들이며, 이기주의를 넘어설 때 환자를 위하고, 학문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뜻 들어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직군간의 이기주의 때문에, 자신들은 환자를 위해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여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아니, 누가 들어도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한의사 선생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다는 선생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지금까지의 진료는 무엇이었습니까? 현대의학을 양의학으로 폄하하는 당신들의 어휘 사용 방식을 그대로 써 보겠습니다. '고대' 진료이자 정확한 진단 없이 이루어진 무책임한 진료였는지요?

저는 한의사 선생님들이 한의학이라는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진료를 해 왔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발언을 보면, 고대진료를 행해오며 국민의 건강권을 잠재적으로 해쳐왔고 국민의 가벼운 주머니를 더 가볍게 만들어 왔다고 밖에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의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통탄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현대의료기기를 지금부터 사용하면서 경험을 쌓으면 좋은 진료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동안 발생하는 국민의 건강권 침해와 수많은 비용은, 어느 나라국민들이 희생하는 것인가요? 바로 당신들이 그렇게 위한다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X-ray 장비, 초음파기기와 CT, MRI, 내시경을 들여놓고 경험 없는 진료를 하면서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받고, 제대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못한다면 의료 이용자인 국민들에게 그것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현대의료기기를 계속 사용해 왔던 의사들조차도,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장비들을 당신들의 손에 맡겨 달라는 것인지요.

설령 진단을 할 수 있더라도, 한의학적으로 치료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그리고 당신들이 더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진단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치료에는 더욱 한계가 있는데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는 말씀이신지요? 전문직의 전문성과 도덕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저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배가 아파서 CT와 초음파를 시행하였는데도, 급성 충수돌기염을 진단하고 치료하지 못해서 더 힘든 일을 맞이하는 것을 사람으로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저는, 다리에 힘이 빠져 MRI를 찍었는데, 급성 신경압박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하지 못해서 평생 목발을 짚고 살아가야하는 것을 사람으로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저는, 가슴이 아파 CT와 초음파를 시행하였는데도, 심근경색을 진단하고 치료하지 못해서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야하는 것을 사람으로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앞으로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일들을 감내할 자신이 없습니다. 국민의 건강을 지켜야 할 의료인이, 앞장서서 국민을 해치는 것을 눈뜨고 볼 자신이 없습니다. 한의사 선생님들이 전문성 이전에, 사람으로 당연히 가져야 될 양심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한의학이라는 고유의 방식으로 이때까지 환자들을 보살펴 오시지 않았습니까. 한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을 지켜나가고 국민들을 위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잠깐 병동에 환자분을 뵙고 와야겠습니다.
방금 배가 아픈 환자 분의 증상, 항암치료력을 고려하였을 때 추가적인혈액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혈액 검사를 처방하였고, 이상이 있으면 CT로 추가 검사를 진행할 수도 있겠다는 임상 결정을 내리고 왔습니다. 현대의료기기는 의사의 복잡한 임상 결정을 바탕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펜을 잡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 정부 관료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2013년 건강보험급여에서 영상진단 및 방사선치료료, CT, MRI 비용 급여를 합치면 약 3조원에 이릅니다. 초음파를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입니다. 보험인정이 되지 않는 질환이라, 비급여로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직접 나가는 비용을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이정도입니다.

통계에 제시된 의사수가 9만명, 한의사수가 1만 8000명 정도라 임을 고려하여 직관적인 단순 계산으로 10만 8000명의 의료인이 급여를 청구한다고 가정했을 때 6000억원 이상의 추가 급여가 더 발생합니다.

중증 질환에 대한 초음파 급여화 예산 3000억원도 보장 못해서, 많은 중증 질환을 앓는 국민들의 혜택을 막고 있는 정부가, 장차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불필요한 급여 지급을 늘려나가며, 국민들의 주머니를 더 가볍게 하는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하는 것인지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현대의료기기 사용권을 의사에게 맡겨 놓는다면,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내고 국민의 주머니와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명명백백합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새벽 4시입니다. 하나둘 자리 빈 침대를 채우며 불을 끕니다. 병동을 들락날락하는 와중에 짧게나마 글을 썼습니다. 병동의 환자들이 계속 눈에 밟힙니다.

환자분들의 얼굴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알려주는 수치들을 머릿속에 생각하니 마음을 불편합니다. 하지만 "소의치병 중의치인 대의치국" 이라는 구절이 잠깐 떠오릅니다. 학부 시절에 의사로서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서는 나라가 잘못할 때 그것을 지적하고 고치자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잠깐 떠오릅니다. 1시간 반 후에는 병동에 다시 내려가야 하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오늘 하루도 버텨가는 무명의 젊은 의학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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