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6 17:03 (화)
청진기 재능인가 열정인가
청진기 재능인가 열정인가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5.01.05 10:0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위대한 예술은 어떻게 탄생할까.

작가의 타고난 재능일까, 아니면 부단한 노력의 소산일까.이런 질문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예술가는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비단 예술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그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좌뇌와 우뇌를 조화롭게 사용할 때 상상력과 창의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것처럼 재능과 열정이 어우러질 때 기대이상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부단한 열정을 지닌 두 명의 의사를 알고 있다.
P는 의과대학 1년 선배이다.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를 익히 알고 있다. 그는 한국 현대시단의 등뼈인 <원탁시>의 창단 멤버이자 초대 회장인 범대순 시인의 딸이다.

1967년 발간해 올 초까지 무려 59호를 발간한 <원탁시>는 그야말로 한국 현대시의 산 증인이다. 작년 초에 작고한 시인은 자신이 살던 집을 범대순 시문학관으로 손수 꾸미고 초창기 한국 현대시의 귀중한 자료를 한데 모아 두었다. 일찍이 영미시를 전공한 시인은 유럽을 돌아볼 때마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우리나라 문학관을 몹시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시인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만 봐도 그의 재능은 짐작이 가지만 내가 알고 있는 P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는 학창시절 의과대학의 레전드였다. 세실이라는 내과학 교과서를 손수 번역해 노트를 만들었는데 후배들에게까지 전수됐다. 나처럼 영어실력이 부족해 원서 읽기가 더딘 의과대학생에겐 귀중한 보물처럼 전해 내려온 모범전서였다. 그 노트는 점점 더 진화해 한참 후배들에게까지 족보처럼 전해진 걸로 알고 있다.

학구파인 그는 소아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후 아기 수면교육 전문가이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진료에 매진하고 있다. <엄마랑 아기랑 밤마다 푹 자는 수면습관>이라는 책을 낸 바 있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시를 가르쳐주지 않은 것에 서운한 속내를 살짝 내비친 적도 있다.

진료시간외 틈틈이 쓴 글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의협신문>의 고정 필자로도 활약한 바 있는 그의 필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나는 <의협신문>의 청탁을 받고 맨 먼저 그의 글을 찾아 읽었다.

K는 유명한 의사 수필가이다.
그는 이미 4권의 작품집을 상재한 기성 작가이다. 그는 첫 수필집 <초대>를 통해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위로> <의사로 산다는 것> 등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에는 늘 문학의 현장과 의학의 현장이 공존한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해박한 문학적 식견에 놀랐고 어마어마한 독서이력에 또 한 번 놀랐다. 의사이면서 이토록 많은 문학작품을 탐독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은 그의 성장배경을 보면 곧바로 풀리게 된다. 

어쩌면 그의 타고난 재능은 이미 예견돼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역한 영문학자 김재남 교수가 그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이해 완역된 작업은 세계적으로도 일곱 번째 이룩한 쾌거였다. 그 때가 그의 나이 다섯 살이었으니 그가 책 속에 파묻혀 자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세상의 전부인 아버지의 뒤를 좇아 문학의 길로 가기를 희망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당신에게는 귀하고 숭고한 일이지만 그 버거운 짐을 자식들한테는 지워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형제들에게 그랬듯이 막내딸인 그에게도 현실적인 직업인 의사의 길을 권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첫 생명을 받던 날도 셰익스피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생명을 받드는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 할수록 내면에서 솟구쳐 오르는 문학적 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결국 그는 의사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다시 문학을 공부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그에게는 운명적인 끌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발간한 <명작 속의 질병이야기>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읽었다. 문학잡지에 연재할 때부터 이미 열혈독자였지만 다시 읽어 보니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의 문학적 성취를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그는 나의 문학적 이정표였다.

P는 범은경, K는 김애양. 둘 다 여자 의사이지만 내가 인칭대명사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 것은 재능과 열정에 있어 남녀의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겸비한 재능과 열정이 새해 들어 더욱 더 빛을 발하기를 고대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