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5 18:04 (목)
청진기 오만과 편견

청진기 오만과 편견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4.12.22 10:53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중식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 엄중식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땅콩'으로 촉발된 대한항공의 파문 이후 해당 재벌 일가의 오만한 전횡이 하나씩 제보되며 끊임없이 까발려지고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며 확산일로에 놓여 있다.

심지어는 정부마저 운항 정지와 같은 강력한 제재를 검토하고 회사 명칭 중 '대한'이라는 상호를 회수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것 같다. 약자에 가해진 강자와 가진 자의 횡포에 대한 분노가 활화산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회항 파문 전에도 부당한 처우에 대한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과 같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발생했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신분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과 사회적 갈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속칭 '갑(甲)질'이라는 고상하지 못한 신조어를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편견, 불평등, 차별 등에 대한 더 많은 성찰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이며 진실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런 '갑질'이 가장 먼저 일어났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곳이 병원이고 '갑질'의 주체가 우리 의사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 위해 오랜 기간 학습과 수련을 통해 쌓은 의사들의 전문성과 이에 의지해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려는 환자가 상대적 약자라는 상황은 환자-의사간의 건전한 상호 신뢰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불평등하며 일방적인 상호 관계를 만들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이러한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관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보건선진국이 된 여러 나라에서도 과거 경험했고, 이를 개선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시스템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과거 '신(神)적' 존재로 군림하던 의사와 병원에서 벌어진 '갑질'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미화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과거 진료실과 병동에서 군림하는 오만한 의사들과 환자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일방적인 병원 행정으로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고통은 의료계의 보이지 않는 그늘이 됐다.

특히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환자들의 경우 사회적 신분이 높거나 경제적으로 풍족한 계층에 비해 더 많은 불평등과 차별을 병원에서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고 보호받지 못한 이들의 고통과 분노가 쌓이며 국민의 의료계에 대한 반감과 편견이 사회적으로 고착화됐다.

국민이 가진 의료계에 대한 반감과 편견으로 인해 의료계는 역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돼 갔고 의료 수준의 급격한 발전과 사회 경제 수준의 향상에도 수가 개선과 의료계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번번이 외면당하고 있으며 부도덕한 개혁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최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무한경쟁과 의료기관 인증과 같은 객관적 평가가 진행되며 많은 병원들이 '환자 중심' 또는 '환자 제일'을 표방하며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의 양과 질을 높이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상황이다.

또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친절한 의사 선생님들이 곳곳에서 훌륭한 진료로 환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평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특히 대형 병원에서 환자들이 3분을 넘지 않는 진료를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장거리 이동을 마다하지 않는 의료 체계를 여전히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진료 시간이 짧다 보니 의사-환자 양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 과다한 진료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이나 증가하는 사고를 환자-의사간에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고 있다.

전공의들이 의학적 지식과 술기를 갖추는 것 이외에도 진료 외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원만하고 합리적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수련 과정도 왜곡이 심하고 적정 수련을 할 수 있는 환경도 불충분하다.

아주 소수이겠지만 계급의식에 찌들어 환자 보기를 우습게 알고 차별을 서슴지 않는 불량 의사들을 퇴출시키거나 제재할 수 있는 장치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의료계가 더욱 국민 친화적이며 존경받는 전문가 조직으로 평가받으려면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행동하는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한 양보와 결단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