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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삶의 조건

청진기 삶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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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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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향 주 박사( 세연가정의학과의원 아크로마인드연구소 원장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 송 향 주 박사( 세연가정의학과의원)

"남편이 들어올 시간이 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멍해집니다. 들어오면 또 무슨 트집을 잡아서 나를 괴롭힐까? 그리고 감정이 격해지면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환자는 이러한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만성적인 두통과 불면증으로 수 년 동안 고통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제 친정어머니도 아버지에게 학대와 무시를 당하고 살아서 난 아버지를 무척 싫어했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너무 밉습니다. 용서할 수가 없어요."

이 환자에게는 어린 시절 경험 했던 어머니의 무력함과 아버지의 학대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남편의 학대가 가중돼 심한 신체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이 환자는 자신의 아픈 기억에 얽매여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위변화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픈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삶의 변화를 위한 행위 변화를 이뤄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뤄나갈 수 없는 것인가?

세계적인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망망한 우주의 나이를 138억년으로 이해하고 있다. 138억년을 1년으로 축소해 놓는다면 사람이 우주에 모습을 나타낸 시점은 12월 31일 11시 59분 43초이다.

즉 인류가 우주 안 지구에 모습을 보이고 대를 이어서 살아온 긴 시간이 17초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주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나'라는 존재는 아주 미미한 하나의 우주입자일 뿐이다. 물리학적으로 세상을 이해하자면 '나'는 하나의 우주먼지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먼지에 인간의 몸과 정신이 들어가 이 하찮은 우주먼지는 꿈틀대면서 이 꿈틀거림이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기적도 발휘할 수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가?

사람을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여러 관점으로 접근해 정리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언어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이 언어로써 상호간에 소통도 하지만 나의 지식을 언어에 저장해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은 하나의 개체가 사는 동안 습득한 기술을 다음 세대가 자신의 생애기간 동안 그대로 다시 습득하게 되므로 세대가 바뀌어도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언어라는 기구가 있어서 이 언어는 나의 생애에 습득한 지식을 기록하고 다음세대로 전달한다.

다음 세대는 이 선대의 언어기록을 파악하고 그 지식 위로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더하고, 또 그 다음 세대는 모든 이전 세대를 거쳐서 쌓아온 지식에 자신의 지식을 더해 다음 세대로 전해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의 전달과 이에 따른 인류 지식의 증가는 고대 사회에서 지금의 현대 사회로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더구나 지식축적의 기술 발달로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인간이 창조할 다음 세기의 미래 세계를 예견조차 하기 힘든 급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의 학습과 기억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대두된다. 아무리 창고에 보물이 가득하더라도 내가 이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습과 기억은 뇌가 담당한다.

뇌는 어떻게 새로운 사실을 습득하고, 학습한 것을 저장하고, 인출(retrieval)해 회상하는가? 이러한 뇌의 작용에 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조금씩 그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수행되고 있는데 정작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과정에 얼마나 의식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사람은 매순간 전혀 새로운 상황에 노출돼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과 유사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기억에 있는 지식을 회상해 대처하며 살아간다.

이런 과정에서 저장된 기억은 변하지 않으나 회상되었을 때의 기억은 변화에 취약하게끔 뇌가 발전했다. 즉 기억은 회상돼 행위로 옮겨져야 가치가 있는데 회상 상태에서 당면한 상황에 따라서 기억이 변하고 이 변한 기억이 다시 저장돼서 기억의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전자동시스템이 아니다. 기억의 변화에 자신의 의지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기억을 내가 의식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긍정적 의지의 힘으로써 발생하는 위약 효과인 플라시보(placebo) 효과가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변화는 좋은 방향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플라시보와는 반대로 부정적인 의지는 노시보(nocebo) 효과를 나타내어 개체의 생존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학습해야하고 학습된 기억을 회상해 행위에 옮겨야 한다. 또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억을 회상 상태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지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 이러지 않고서는 타고난 인간의 부정적인 본성을 극복할 수 없다.

30년 이상 수도생활을 하는 성직자도 매일 새벽예배, 새벽예불, 새벽미사로써 학습된 기억을 회상해야만 그날그날 조금씩 더 긍정적인 행위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반복해 훈련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숙하는가?

인간이 인간으로 성숙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우선 학습해 기억하고, 다음 단계로 이 기억을 반복해 회상하며 훈련하는 행위로 옮겨야 한다. 이런 행위가 없으면 우리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지 성숙한 인간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다.

광막한 우주의 한 점인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별에서 우리가 없는 시대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우리 인생의 지혜를 선대의 지식에 더해 전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살아 있을 때 매일매일 학습하고 훈련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그리고 과학의 모든 분야를 매일매일 학습하고 훈련해 행위로 옮겨야 한다.

이제 며칠이면 큰 획을 긋고 지나가는 2014년을 뒤로하고 2015년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이때에 이 지구별의 모든 후손들을 위해 희망의 약속을 자신에게 해보자.

2015년에는 매일매일 지식과 지혜를 학습하고 훈련하고 행위로 옮기겠다는 소망을. 이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살아있음의 무게를 지탱하는 삶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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