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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2014년, 지난 1년을 정리하며
청진기 2014년, 지난 1년을 정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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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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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 의원)
▲ 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 의원)

또 한 해가 속절없이 저물어 간다.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에서 전혀 희망할 수 없는 공상 만화 수준의 이야기로 첫 글을 쓴 지도 이제 꼬박 일년이 됐다. 어느 후배는 그 내용이 진짜인 줄 잠시 놀랐었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런 청탁 칼럼을 쓴다는 일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며 화면 위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는 일도 잦았다. '2014 청진기'라는 폴더를 열어보면 다 쓰고도 다른 현안 때문에 쟁여 놓은 글, 쓰다가 만 글, 그리고 제목과 몇 개의 열쇠 말만 있는 아홉 편이 남아 있다.

열 한 번의 글을 다시 훑어보니 미소 짓게 하는 미담이나, 내일의 진료 환경이 오늘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찬 내용은 없다.

기형적인 우리나라 의료 제도의 모순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 의사 개개인이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하고 행복해야 국민과 환자들이 더 질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미래 의료를 담당할 우수 인재의 선발과 교육 그리고 지속적인 자기개발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 사회 정의에 반하는 '차등수가제'라는 정책이 법리적 옹호까지 받아가며 12년이나 지속되어 온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대한 개탄, 과학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는 한의학이라면 환자들의 자기결정권과 의료재원의 공정한 분배라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 볼 때 건강보험이 아니라 원하는 국민-환자가 자비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사회 전반의 기초 부실과 근본 원인인 관치 규제, 그리고 의료에 대입해 본 현실과 대재앙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의료의 침몰, 상급종합병원이 본연의 역할인 '교육·연구·진료'에 집중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는 암담하며 특히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의 환자들의 혼란과 재정적 낭비, 피폐하고 위태로운 환자-의사 관계를 개선하고 동시에 최소한의 감정 소모와 최선의 진료를 위해 충분한 면담 및 진료 시간의 확보가 결정적이라는 주장, 의사 사회 지도자의 덕목과 리더십 그리고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과 교훈을 쌓아가야 할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실낱 같은 기대 등등 ….

새로운 의견이나 주장은 하나도 없다. 당사자인 의사, 정책 입안자나 실무자, 관련 학자, 이제는 많이 달라진 언론의 논지 등을 살펴보면 어느 누구라도 우리나라 의료의 산적한 문제들 각론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다만 제기되는 문제의 우선 순위와 해결 방안이 직역, 전문과, 세대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 최대의 늪이다.

지난 15년 공생활의 경험을 통해 늘 안타깝고 분노하게 되는 것들은 국가와 사회가 의료 비용에 대해 충분한 비용 부담을 할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 질 높은 의료를 요구하는 일종의 착취 구조를 고착화 시켜가고 있다.

의료에 필수적인 인적 자원의 육성과 기반 의료 시설에 대한 투자를 거의 안 하면서 공공성을 강요하는 이율배반을 당연하다는 듯 주장하고 있다. 사회 전반의 정서는 의사라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감시와 처벌과 탄압의 대상으로 매도하고 있다.

미래 한국 의료를 책임질 의사 자원의 선발과 교육, 그리고 수련 및 장기적인 평생 자기 개발의 토대가 돼야 할 명확한 전문직업성의 책무와 철학과 윤리의 토대가 없다.

적성과 신념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에 맞춰 심각한 쏠림 현상이 반복되는 한 의료인력의 왜곡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의사 전문직의 대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국민과 사회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설득과 홍보, 확고한 신념의 지속적인 투쟁 그리고 유연한 정치적 협상력에서 이미 그 한계를 노출했다.

2014년에도 여러 의료계 내부 문제들이 부상했는데, 그 중에서 특히 과거라면 그냥 내부적으로 묻혀버릴 수도 있었을 만한 상급종합병원과 수련의들에 관련된 사안들에 눈이 간다. 의료개혁의 촉매는 의외로 주요 정책이나 거대담론이 아닐 수 있다.

모든 항거·반란·혁명의 시작은 늘 기득권자들이 '이 정도면 별 일 없겠지' 하며 안일하고 사소하게 생각하던 '밥과 처우' 즉, '부당하며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분노와 절망의 임계점으로부터 촉발된다.
수련의나 비정규직 전임의의 업무 강도에 합당한 처우개선 여부가 앞으로 가장 예민한 뇌관이 될 것이다.

현재 이들의 노동력 착취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규 의사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하고 제대로 된 수련 환경을 확보하려면 OECD 평균 수준의 국가적 비용 투자가 필요할 것인데, 원격의료 사업이나 의료 자법인 설립 정도의 수익 모델로는 그 추가 비용 충당은 어림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의료기관 종별 손익 한계는 냉혹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별 일 없기만을 바라며 낭떠러지를 향해 갈 것인지, 갈아엎어 새 판을 짤 것인지…. 다가올 2015년에는 이것이 궁금하다.

대한의사협회 회원 독자 여러분, 그 동안 부족한 글임에도 읽어주시고 간혹 만나면 아는 체 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매 번 마감 시간이 스트레스이기도 했지만, 이 지면을 통해 제 생각을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의협신문>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새해에는 모든 분들이 만사 형통하시고 가내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고 의사 직분에 보람을 느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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