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주 서울의대 교수, 대한의학회 'e-newsletter'서 밝혀
"의사로서 일을 할 때, 의사윤리지침이 실제적인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까?"
"의료 현장에서 윤리적인 딜레마를 만났을 때, 갈 길을 밝혀주는 지침이 됩니까?"
의사윤리강령의 문구 하나하나가 의료전문직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의사윤리지침이 의학과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시기에 맞게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옥주 서울의대 교수(인문의학)는 대한의학회에서 발행하는 <e-newsletter> 11월호에서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의 현황과 개선방향'이라는 글을 통해 "의사윤리지침은 국제적 보편성과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의사윤리지침은 의학과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의사들이 계속 진화·발전시켜야 할 문서임에도 우리나라 의사윤리지침은 2006년에 개정된 이래 8년이 넘도록 그대로 방치돼 있다"고 밝혔다.
또 "지난 8년간 우리 사회의 의료 환경이 급격히 변했으며 의료와 생명윤리에 관한 법률이 수 차례 개정됐음에도 의사윤리지침은 2006년 시점에 고착돼 화석화 돼 있기 때문에 현재의 의사들에게 살아있는 지침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961년 10월 '의사의 윤리'를 제정해 의사들이 지켜야 할 의료윤리의 원칙을 제시했다. 또 1964년 그 산하에 윤리위원회를 뒀으나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가 1995년 이를 전면 개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기존의 '의사의 윤리'를 폐지하고 1997년 '의사윤리선언'을 제정, 이를 구체화 해 '의사윤리강령'을 만들었다. 2001년에는 구체적인 의료 행위의 윤리성을 판단하는 실무지침으로 '의사윤리지침'을 제정했다.
또 현재의 의사윤리강령과 의사윤리지침은 2006년에 만들어졌는데, 의협에서는 기존의 '의사윤리선언'을 폐지하고 '의사윤리강령'의 전문을 개정해 이것으로 통폐합했다.
당시 의협은 ▲사회제도 및 국민의식구조 변화에 따른 현실 반영 ▲의사와 환자의 대등 관계 구현 ▲의사 모두가 공감, 자율적 준수 유도 ▲소신 진료를 위한 사회적 책임의 구체화 ▲환자의 자율성 존중 및 의사의 책임 구체화 ▲제정자의 취지 고려를 개정이유로 밝혔다.
그러나 김 교수는 "2001년의 지침은 광범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지만, 2006년의 윤리지침의 개정에는 의견수렴이 폭넓지 않았고, 지침의 범위가 대폭 축소된 것은 물론 이전에 윤리강령과 지침에 모두 있었던 '윤리위원회'에 대한 내용은 두 문서에서 모두 삭제됐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의대의 졸업식에서는 졸업생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 대신 2006년도 개정된 8개 조항의 의사윤리강령을 선서하는 등 중요한 문서로 자리잡고 있다"며 "현재의 의협 윤리강령과 지침이 국제적 보편성과 국내의 현실성을 두루 갖춰 의사들에게 실질적인 지침으로서 기능을 하는지 검토해야할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지침은 장기이식, 인공수태시술, 연명치료, 의학연구 등에 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으나 실제로 대부분의 의사들이 환자 진료에서 만나게 되는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의료윤리 문제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의사윤리지침에 포함될 내용이 누락됐거나 의사윤리지침에 포함하기에 부적절하거나 현행법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개정한 지 8년이 지난 의사윤리지침을 살펴보면 지금의 용어나 개념과 맞지 않는 내용들이 있다. 예를 들면 8조의 경우 '의사는 인체 및 생명공학 연구와 관련하여 피험자의 생명, 건강과 인격을 존중하고, 윤리적·의학적·사회적 타당성을 검토함으로써 의술 향상 및 인류의 건강 증진에 기여한다'고 돼있다.
그러나 2012년 2월 국회에서 개정돼 2013년 2월부터 발효중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서는 의학연구에서 '실험을 당하는 사람'의 의미를 내포하는 '피험자(human subject)'라는 용어 대신에 '연구대상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의사윤리지침의 24조~30조까지가 의학연구윤리지침인데, 여기서도 현재의 발전된 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있으며, 의사윤리지침의 인공수태시술·장기이식 등의 세부 내용에서도 그간의 법과 사회와 의학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2006년 개정하면서 윤리위원회에 대한 내용이 모두 없어져, 그간 변화된 내용을 검토해 의사윤리지침에 반영할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의사윤리지침은 우리나라 의사 모두의 윤리지침이므로 의협 뿐 아니라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여러 관련 단체에서 검토되고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며 "의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윤리지침이 될 수 있도록 의협 의사윤리강령과 지침은 개정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