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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전공의, 주는대로 받았다고 '합의'한건 아냐

인턴·전공의, 주는대로 받았다고 '합의'한건 아냐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4.12.0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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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밀린 당직비 3천여만원 지급' 판결한 이유는?
"교육비용 부담을 급여 적게주는걸로 보전해선 안돼"

10개월간 일한 인턴이 수련병원을 박차고 나와 밀린 수당을 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1심에서 인턴에게 지급된 고정급여 외 3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선고가 나오자 병원계는 조용히 탄식했다.

만약 4년차 전공의가 같은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보상금액은 3년치 지급분인 1억원 가량. '집단'으로 번질 경우 천문학적인 규모로 불어나는 액수를 고려하면 해당 병원만의 문제가 될 수 없어서다.

최근 병원측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전고등법원은 11월 26일 K대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최아무개씨(28)가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한 원심을 유지했다. 인턴과 전공의들에게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한 만큼의 수당을 줘야 한다는 판결이다.

쟁점은 인턴과 병원 사이에 각종 수당 등을 포함한 금액을 월 급여로 지급하는 '포괄임금 약정'을 인정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포괄임금계약이 법이 예정하는 원칙적인 임금 지급계약이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씨가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아무런 이의 없이 급여를 수령했다 해도 그러한 사실 만으로는 포괄임금계약에 대해 묵시적으로 합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 포괄임금 약정에 '우위'

통상적으로 포괄임금은 운수업이나 경비업처럼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 한해 인정돼왔다.

재판부는 "감시·단속적 근로 등과 같이 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지급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병원에서 장시간 근무하는 인턴이나 전공의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인턴을 야간·휴일에 근무토록 하는 게 필수불가결한 상황은 아니라는 언급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재판부는 "병원의 야간 및 휴일 운영에 있어 인턴 인력 사용은 운용의 편의와 재정 부담 경감 등의 차원에서 실시된 관행일 뿐 필수불가결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공의 교육 및 수련으로 인해 수련병원들이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은 인정되지만 이는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전공의들의 근로 제공 및 과소한 급여의 지급으로 보전할 문제는 아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최대 연속 수련시간은 36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고, 응급실 수련시간은 12시간 교대가 원칙이며, 월평균 주당 1일의 휴일을 보장토록 명시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대책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사이 포괄임금 지급약정을 인정할 만한 내용의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K대병원 전공의 수련규정에 일과 외 시간 수련수당을 지급할 것을 명백히 정하고 있다"며 "포괄임금에 포함된 법정수당이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에 미달하는 때에는 그에 해당하는 임금 지급계약 부분은 원고에게 불이익해 무효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상 근거 없는 '노동 자유이용권'…병원측 상고 검토

피교육자이면서 근로자인 전공의의 이중적 신분은 그간 근로시간에 비해 적게 책정된 임금을 정당화하는 요인으로 작용됐다. 이번 판결은 "인턴이 열악한 환경에서 실질적 근로를 제공해온 점을 인정한 판결"이라는 게 원고측 소송대리를 담당한 변호사들의 평이다. 

임제혁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인턴과 전공의에게 지급하는 각종 수당 등 임금이 재정 부담이 아닌, 원래 근로에 정당한 대가를 줘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며 "병원에서 이를 재정적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자체가 근로기준법에 어긋난 견해"라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유사소송이 급증해서 병원 부담이 커질 거라는 관측도 있는데 3년의 소멸시효가 있기 때문에 무작정 걸기 힘들다. 소속 병원과 인연을 끊어야지만 싸울 수 있는 특성상 소송이 엄청나게 많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나지수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는 "병원이 묵시적 포괄임금 약정을 주장했다가 부정된 경우로, 명시적 약정이 있는 후속사건도 생길 것으로 보인다. 포괄임금제는 법상 근거 없는 '노동에 대한 자유이용권'이다. 외국 노동법학자들에게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제도"라고 강조했다. 

병원측은 상고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판결 내용에 대한 상세 검토를 거쳐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향후 병원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례인 만큼 대법원까지 갈 확률이 높다.

피고측 소송대리를 진행한 허아영 변호사(엘케이파트너스)는 "인턴이 정책적으로 피교육생이라는 확실한 지위가 있기 때문에 2심에서 그 부분을 임금 산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주요하게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병원측과 상고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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