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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용기는 전염된다

청진기 용기는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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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0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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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식(한림의대 교수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 엄중식(한림의대 교수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2014년 초에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 바이러스병 확산이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올 초부터 11월 18일까지 총 1만 5351명이 이 병을 진단받았고 이 중 5459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결국 우리나라도 에볼라 바이러스병이 심각하게 유행하고 있는 시에라리온으로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이미 선발대가 현지를 방문해 기초 조사와 현장 파악을 마친 상태이다.

이제 곧 의료진 본진도 현장에 파견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파견될 의료진을 선발 하는 과정에서 예상과 달리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지원했고, 한 동안 이 일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큰 화제가 됐다.

당시 한 매체 기자는 필자에게 '에볼라 바이러스병이 의료진에게 전파되어 사망하는 경우가 속출하는데도 우리나라 의사들이 이렇게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지원한 의사들의 신상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 보니 직접 지원 동기를 확인할 수 없어 아마 같은 의사에게 질문을 한 것 같다. 이에 대해 필자는 두 가지로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첫 번째, 우리나라 의사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이다. 생각보다 많은 의사들이 에볼라 바이러스병의 확산으로 인류 대재앙이 오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의의 결단을 내린 것이라 추정한다.

지금은 멀리 미국에 계신 학교 선배 한 분으로부터 파견 의료진에 참가하기 위해 본인이 그 동안 무엇을 준비했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를 설명하며 최대한 파견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도움을 부탁한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는, 신선한 충격과 존경심 그리고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또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신 감염내과 교수님께서 선발대에 지원해 서아프리카 현장을 가셨다는 소식에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최근 들어 의료계가 영리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많이 보이면서, 의사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 따뜻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믿는다. 의과대학에 입학해 질적·양적으로 방대한 공부와 시험을 견디고,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체감하는 전공의 과정을 겪은 이들이 그저 사회적 성공이나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보장받기 위해 그 길을 걷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다. 근거조차 부족한 이런 저런 규제와 일방적인 압박에서도 의사들이 진료 현장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밥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다.

아직 우리 의사들의 가슴 한 구석에는 위에서 언급한 선배님과 같은 열정과 희생정신이 잘 벼르진 칼처럼 숨겨져 있다. 직업으로 의사를 택할 때는 아파서 힘든 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측은지심과 선한 의지가 내재돼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에볼라 바이러스병에 대한 진지한 의학적 호기심이 이유인 것 같다. 의학자나 임상의사라면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새로운 전염병에 대적해 살아있는 경험을 쌓고, 이를 임상 또는 기초 연구의 자료로 활용할 기회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이번에 파견된 의료진이 성공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병 진료를 마치고 귀국하게 되면, 전염병 유행의 최일선에서 필요한 진료 준비와 운영 노하우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자산이 된다. 정부 입장에서도 이 부분은 엄청난 혜택이다.

우리 정부는 2000년대 사스(SARS), 2009~2010년에는 신종플루라는 이름으로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겪었음에도 대규모 전염병에 대한 방역 수준과 공공-민간의료기관의 진료 능력은 아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얼마 전에 에볼라 바이러스병을 다룬 방송에서도 나왔듯이, 실제 유입환자가 발생할 경우 초기 대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이는 국내 의료계가 아직 실제 상황에 대한 준비와 훈련이 충분치 않음을 시사한다.

결국 환자 발생에 따른 매뉴얼과 이를 통한 시뮬레이션 시행이 절실하게 되는데, 이는 실제 현장을 경험한 의료진에 의해 단기간에 상당 부분 개선시킬 수 있다.

또 이들의 경험은 아직도 생물안전도(Biosafety level) 4등급 수준의 연구시설을 갖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가 에볼라 바이러스병에 집중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서아프리카 현지에 파견돼 진료활동을 벌일 의료진과 지원인력들을 무사히 귀국하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다. 여러 가지 제한 상황이 있겠지만 최대한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하고, 모의 훈련을 통해 안전하게 활동을 마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나비 효과로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숭고한 결심을 하고 떠나는 에볼라 바이러스병 의료지원단의 성공적인 진료와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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