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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인간적인 진료환경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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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승원 기자 choisw@doctorsnews.co.kr
  • 승인 2014.11.2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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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이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이 서훈한 '십자공로훈장(Das Verdienstkreuz am Bande)'을 최근 받았다. 의학과 예술 등을 통해 독일과 한국의 교류에 힘쓴 노력에 대한 성과다.

이성낙 총장은 1960년대말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70년대 말 귀국 연세의대 피부과 교수와 아주의대 학장, 가천대 총장을 거치면서 한국 피부과학 발전에 헌신했다.

정년튀임 후에는 미술사 박사학위를 통해 예술평론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조선시대 총상화에 나타난 피부질환에 대한 고찰로 의학과 미술사가 만나는 학문간 통섭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7일 의학과 예술의 중간지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성낙 총장을 만나 십자공로훈장을 받은 소감과 의학과 예술의 접목 필요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의사로서, 예술평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자면?

인생 1막을 의사로서 치열하게 살았다. 지금은 문화예술 분야의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최근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환자를 안보니깐 스트레스 생길 게 없더라. 하하하. 의사라는 사실에 늘 자부심을 느끼지만 지난 시절 나름 힘들었던 것 같다. 의업은 훌륭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십자공로훈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학과 문화·예술로 한국과 독일의 교류를 이끌었다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독일과 한국에서 쌓은 의학적인 성취와 그 이후 예술평론가로서의 삶을 모두 평가받은 것이라고 본다. 십자공로훈장을 받고 나니 독일 친구들의 반응이 재밌다. 의학상을 받았을때는 "장하다" 정도였는데 훈장받았다고 하니 "정신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놀랍다"고 말한다. 독일 관용구로 매우 놀랐다는 말이다. 그 친구들 입장에서 의외의 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받은 상 가장 인상적인 상이라고 할 수 있나?

물론이다. 의학분야에서는 미국피부과학회 금상과 훌루시 베체트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 훈장은 의미가 다르게 다가 온다. 의학이 아닌 분야에서의 수상이다보니 어떨떨하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주는 상인만큼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독일로부터 많은 혜택을 얻었다. 훈장은 내가 독일에게 주고 싶은 상이다.

사실 진료에 쫓기다보면 문화나 예술을 향유하기 어렵다.

그래도 향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문화와 예술은 의사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환자와의 공감의 힘을 얻는 것은 물론, 의사 스스로도 더 좋은 의사,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60년대말 독일인과 기숙사를 같이 쓰게 됐다. 룸메이트였던 독일 친구는 내심 유럽 룸메이트를 원했다 나를 보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그런 표정을 보고나니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우린 한 달가량 한마디 말도 안하고 방을 같이 썼다. 그러다 늦은 가을 기숙사를 들어가는데 그 친구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듣고 있는 걸 보고 나도모르게 "베토벤!"이라는 감탄사가 나왔고 그 말을 들은 친구와 밤새도록 베토벤의 얘기를 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한 달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사이였다.

그 친구는 그날 이후 독일 친구 모임에 나를 번번이 데리고 갔고 나이 독일 생활은 훨ㅆ니 풍성할 수 있었다. 난 이게 문화와 예술의 힘이라고 본다.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그 힘. 의사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의사 개인적으로도 힘든 진료 일상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선진국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물질적으로 잘사는 것뿐 아니라 모두가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다. 문화와 예술·인문학 등은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전제다.

의료계가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의료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더 삭막해 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자꾸 삭막해 지기만 하는 걸까. 왜 인간미가 점점 없어지는 걸까.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물질적인 가치에만 경도돼 있다. 의료계도 그렇다. 더 많이 벌고 축적할 수 있을진 몰라도 삶은 더 빈곤해지는 경험만 하게 될 뿐이다. 이런 삭막함과 비인간적인 환경 등을 문화와 예술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대단한 문화예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저 위의 막연한 세상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 여유를 갖자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예술을 향유해보자는 말이다. 예전에 읽었던 혹은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작은 전시회에 가고 하는 노력이 삶을 훨씬 윤택하게 할 것이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러운 것 같다.

행복하다. 무엇보다 좋은 제자들하고 같이 보낸 한국에서의 삶이 그렇다. 앞으로도 제자들과 의학과 문학, 예술 등을 교류하면서 살 계획이다. 이 자리를 빌어 제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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